지금부터 한 사십년전쯤.
강원도 시골학교에 근무할 즈음,
가끔 원주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늦은 시간까지 시간을 보내다 돌아온다.
그날은 마침 눈이 내려 머 겁날 것이 있나.
원주의 태장까지는 버스로 와서 나머지 몇 km는 달빛을 받으며 걸어서 귀가한다.
한잔 먹은 기분으로.
눈을 맞으면서 걷는 길 왼쪽은 한 십여미터 낭떠러지가 있는 강변이고, 오른쪽은 산인데 조금 걷다보니
길이아닌 곳을 걷고 있다.
분명히 정신을 차리고 걷는다고 걷고 있는데 실제로는 산 윗쪽으로 길도 아닌 곳으로 걷고 있는 것이다.
조심한다는 것이 오히려 윗쪽으로 차츰 올라갔던 모양이다.
몇십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홀린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일이었다.
조선 중기 17세기 쯤의 시인 임연당 이양연은 이런 시를 지었다.
穿雪夜中去 한 밤중에 눈길을 걸을 때는
不須胡亂行 모름지기 어지럽게 걷지말라
今朝我行跡 오늘 내가 걸은 이 행적은
遂作後人程 훗날 다른 이의 이정표가 되리니.
사람이 살다보면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살 수야 있겠는가마는
특히 교직에 있는 사람이나, 자녀를 둔 부모가 된 사람은 특히 행동 하나하나에
정말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 잘못된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 정도 일이야 머, 이런 일 한번쯤이야....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의 스승이나 우리의 부모들이 저지른 수없이 많은 잘못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또 우리가 저지른 사소한 잘못이나 실수 역시 우리의 후인들이 세세히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이다.
눈에 홀려 길을 분간할 수 없는 실정에서
후인들은 그냥 앞 사람이 걸은 길을 믿고 걷게 마련이다.
얼마나 섬짓한 이야기인가.
바르고 착한 모습을 우리의 아이들에게 보여 그 모습대로 아이들이 살아가게 하는 것이
모름지기 어른된 사람들의 도리일 것이다.
오늘 시향을 지내고 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몇자 적는다.
오십년후, 백년후 나의 아이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등에 진땀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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