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8. 9
애를 키우다 보면 초, 중, 고등학교까지는 부모 말을 잘 듣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머리가 컸다고 제 뜻대로 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딸애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 자원봉사 NGO활동을 하겠다고 KOICA 단원으로 몽고로 떠났습니다. 애비로서의 마음은 몇 년 있다 시집이나 갔으면 제일 좋겠는데.... 그게 작년 5월, 도대체 궁금하기도 하고, 또 이참에 연로하신 어머니 모시고 여행이나 한 번 하자고 지난 7월 29일 5가족(어머니, 여동생, 안식구, 아들)이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몽고라고 하면 얼른 떠오르는 생각이 넓은 초원, 어린 아이가 말 달이는 모습, 친기스칸, 환향녀 등을 머리에 그려 보면서 인천공항을 출발하였습니다.
자이승 전승기념탑입니다. 1910년대 중국이 몽고를 침범했을 때, 소련의 도음으로 나라를 되찾은거죠. 지금 몽골인들이 사용하는 문자가 소련의 문자입니다.
자이승기념탑 근처의 복드항 캠프입니다만 비가 오는 관계로 서둘러 내려 왔습니다.
딸애가 근무하는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이곳의 의료시설은 매우 열악하다고 합니다. 이 병원이 몽고 제1병원이라는데 우리 주변의 병원모습이 아니라 시골의 보건소를 상상하면 됩니다.
파라다이스 리조트 모습입니다. 우리 교민이 3년전에 설치하여 휴양지로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방갈로의 모습입니다.
몽골의 역사박물관의 모습니다. 칭기스칸 역사에 대한 큰 기대를 가지고 방문했는데 자료가 상당히 빈곤하였습니다. 멀리 친기스칸의 동상이 보입니다. 원래는 사진촬영 금지 구역인데 몰래 찰칵.
우리 조계사에서 몽골에 파견하여 선교활동을 벌이고 있는 고려사를 방문하였습니다. 불교 스님 한 분이 선교활동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곳 불교는 티벳불교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인구의 대부분이 불교의 신자인데 교려사에는 약 백여명의 신도가 있다고 합니다.
몽골인근의 가정집을 방문하였습니다. ‘가나’라는 여고생의 집인데, 우리 나라로 보면 서울주변의 달동네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몹시 어려운 환경인데도 인심이 그대로 살아 있었습니다.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이 참 감명 깊었습니다. 빈한하게 생활하면서 집에 있는 모든 음식을 다 내 오는 모습이 그들이 손님을 맞는 전통을 잘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방문한 모든 손님에게 일일이 선물을 전해 주었습니다. 답례품을 미처 준비하지 못하여 우리 돈을 애들에게 쥐어 주었답니다.
이 댁에서 꺼내 준 몽골 전통의상을 입고.
칭기스레스토랑의 모습입니다. 이곳도 우리 교민이 운영하는 식당입니다. 식사 중 공연도 하여 몽고 전통을 볼 수 있었습니다.
8월 1일은 바양보르휴양지에서 1박하기로 하고 기차를 타고 울란바타르역을 출발하였는데, 이곳 열차는 우리와는 달리 안내 방송도, 역의 푯말도 없어서 우리 같은 외국인에게는 여행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승무원에게 부탁을 하고 침대석을 얻어 가다 이야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하였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승무원이 뭐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와서 잠깐 잠이 든 딸애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바양보르를 지났다나 뭐라나. 놀라서 다음 역(샤퉁역)에 내렸는데 마침 반대편에 하행 열차가 있더라고요. 일단 열차를 잡고 보자고 달려 갔지만, 굽어진 철로 때문에 기관사가 보지 못하고 허망하게 떠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하루에 기차가 한 대밖에 다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소련쪽으로 상행 한번, 남쪽으로 하행 한 대.(참고로 몽고 전체가 단선 철로임) 그럼 우리 보고 어쩌란 말이야.
당황스런 마음에 마을에 들어가 숙소를 구해 보려 했지만, 방의 여유가 없었고, 다행히 전화시설은 있어서 바양보르휴양지와 통화하여 차가 이곳으로 올 수 있는지 알아보고 기다리는 동안 이곳의 인심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수태채’라는 차부터 시작해서 음식을 내 놓는데, 도저히 먹을 수가 있어야지. 마침 이곳에 반경 몇키로 이내 단 한곳만 있는 가게가 있었습니다. 반갑게도 우리의 신라면(컵)과 에쎄담배가 있는 겁니다. 그것으로 요기를 하고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는 쉬시고, 마을 아이(치치)의 안내로 뒷산에 올랐습니다. 몽고의 초원을 처음보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이곳은 암이나, 당뇨에 좋다는 차가버섯의 산지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산에 다 올랐을 때, 마을의 대학생 사라가 차가 온다고 내려오라고 손짓, 발짓, 고함으로 알려 주었습니다.
참 고마운 이곳에서도 몇 푼 돈으로 고마움을 표현하였습니다.
휴양지에서 보내준 차는 일본산 SUV 차량이었습니다. 계속 내린 비로 길이 많이 파였지만, 이놈 힘 좋더라구요. 참고로 신형차는 대부분 일본산이고, 중고차는 대부분 우리 차입디다. 버스는 대부분 현대나 대우버스였습니다. 도로를 달리는 차의 반 이상이 우리 차였습니다. 전차도 있는데, 레일 전차가 아니고 버스로 된 전차입니다. 가끔씩 연결선이 전선에서 벗어나 다시 연결하는 해프닝도 봅니다.
어쨌던 바양보르에 여장을 풀고 삼겹살로 소주한 잔하고 밤이 이슥하여 딸애의 안내로 디스코 텍을 찾았습니다. 몽고사람 춤 잘 추대요. 쌍쌍이 어울려 춤추는 모습을 보던 어머니. 지팡이 던져 버리고 트위스트를 6식구가 추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외국인의 춤을 본 몽골인들 박수로 박자를 맞추어 주기도 했습니다. 인기 짱이었습니다. 어떤 몽골여인이 다가와 춤을 청해 플러어에 나가 한바퀴 돌았지만, 발을 맞출 줄 알아야지. 그런대도 박수 엄청나오대. 야, 이때는 사교춤 잘 추는 종택이 생각이 많이 나더라. 왠 몽골 군인 중령 두 사람이 다가와 ‘당신 정말 멋쟁이야.’ 그러는 것 있지. 어쨌던 재미있게 보낸 저녁이었습니다.
다음 날 딸애와 둘이서 등산을 했는데, 마침 양떼를 모는 사람을 만나 말타고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뒷산 꼭데기에서 왼쪽을 바라보면서
데리고 간 집 애가 식중독으로 꼬박 하루 반을 꿈쩍을 못해 영양제를 투여하고, 금식을 시키고, 이 녀석만 집에 두고 마지막 날 일정을 시작했습니다.(8월 3일)
울란바타르 인근의 ‘가조르트’에 있는 몽골리아 호텔로 향했습니다. 이곳에서 몽고의 전통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전통 게르로 꾸민 객실과 전통 가옥과 역대 카한들의 동상도 볼 수 있었습니다.
몽골리아호텔의 게르안의 모습
호텔담장을 성벽으로 만들었더라구요.
역대 카한들의 동상앞에서
오후에는 쇼핑으로 시간을 보내고 밤 12시20분 비행기로 귀국하였습니다. 일반 페키지 여행과 달리 딸애 집에서 머무르면서 인근으로 다녔지만 몽골의 관광은 충분했다고 생각됩니다.우리 나라 70년대를 연상시키는 지금의 몽골은 그네들의 말마따나 10년 후면 엄청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진국은 선진국대로, 후진국은 그 나름대로 관광할 만 하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출국장을 빠져 나올 때까지 손을 흔드는 몽골인들의 따뜻한 정과 후한 인심을 느끼면서 이곳에 오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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