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한학관련

격몽요결-완역

eungi5 2009. 2. 2. 18:14

擊 蒙 要 訣

 

擊蒙要訣은 宣祖 十年(1577) 栗谷 李珥先生이 海州 石潭에서 講學하면서 제자들을 敎誨(가르칠 회)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이 책은 「千字文」, 「小學」, 「童蒙先習」과 더불어 初學者敎育用의 基本漢文敎材로 널리 사용되어 왔는데 다른 것들은 중국서인데 반해 「童蒙先習」과 「擊蒙要訣」은 우리 선인들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는 점은 우리의 자랑이 아닐 수없다.

總 十章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는 원래 뒤에 祭禮를 설명한 부록이 있었으나 여기서는 본문과 율곡이 간단히 기입한 註만 실었다. 이 수록작업에 참고한 자료는 韓國精神文化硏究院에서 발간한 「栗谷全書」이다.

 

일 러 두 기

喜同惡(오)異 汨於流俗 - 惡을 ‘오’로 발음한다.

希기奇效者也, - ‘,’가 있는 부분에서 문장읽기를 마친다.

容重(不輕擧也 若趨于……此) - ( )안은 李珥의 間註이다.

人生斯世 非學問 - 공백부분에서는 끊어서 읽는다.

 

-자료 원출처 : 梁彰珍 (인터넷)

-글 97로 UP작업 : 金國會 (kukhee@edunet.kmec.net)

홈페이지 http://my.netian.com/~kukhee '1999. 1. 15일

격몽요결은 율곡이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저술한 책이다. 집안의 아이들도 열심히 익혀 그 내용이 현대와 다소 괴리된 면이 없지 않으나 과거 우리 조상들의 생활과 문화를 살펴서 아름다운 전통은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물론 어려운 한자는 주를 달아 두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민은기

 

 

擊蒙要訣 序

人生斯世 非學問 無以爲人 斯(이 사)

사람이 이 세상에 나서 학문이 아니면 (사람다운)사람이 될 수 없다.

所謂學問者 亦非異常別件物事也,

이른바, 학문이란 것은 역시 이상스럽고 별다른 것이 아니고

只是爲父當慈 爲子當孝 爲臣當忠 爲夫婦當別 爲兄弟當友 爲少者當敬長 爲朋友當有信 皆於日用動靜之間 隨事各得其當而已 非馳心玄妙 希覬奇效者也,

馳(달릴 치),覬(넘겨다볼 기)

다만 아비된 자는 마땅히 자애로와야 하며, 자식된 자는 마땅히 효도해야 하고, 신하된 자는 마땅히 충성하여야 하며, 부부간에는 마땅히 유별하고, 형제간에는 마땅히 우애로와야 하며, 젊은이는 마땅히 어른을 공경해야 하고, 친구간에는 마땅히 신의가 있어서, 일용의 모든 일에 있어서 그 일에 따라 각기 당연하여야 할 뿐이요, 현묘한 것에 마음을 두어 기이한 것을 노려서는 안된다.

但不學之人 心地茅塞 識見茫昧,故 必須讀書窮理 以明當行之路然後,造詣得正而踐履得中矣, 茅塞(띠모, 막힐 색), 茫昧(아득할망, 새벽매), 詣(이를 예)

다만 학문하지 않은 사람은 마음이 궁색하고 식견이 좁으므로, 모름지기 글을 읽고 그 이치를 연구하여 마땅히 향할 길을 밝힌 연후에야, 행하는 것이 올바르고 편벽되지 않은 길을 걸을 수 있게 될 것이다.

今人 不知學問 在於日用 而妄意高遠難行,故 推與別人 自安暴棄 豈不可哀也哉,

요즘 사람들은 학문이 일상생활에 있는 줄은 모르고 망령되게 높고 멀어 행하 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여, 특별한 사람에게 미루고 자기는 자포자기하니 어찌 불쌍하지 않으랴.. 推(옳을 추)

余定居海山之陽 有一二學徒 相從問學 余慙無以爲師 而且恐初學 不知向方 且無堅固之志而泛泛請益 則彼此無補 反貽人譏, 慙(부끄러울 참)

내가 해주의 양(해주 석담)에 있을 때 한 두 학도가 서로 따르며 학문을 물었다. 내가 스승이 될수 없음을 부끄럽에 여기고, 또 초학의 향방을 모르고, 굳은 뜻이 없이 범범히 배우겠다고 한다면 피차에 도움이 없고 도리어 남의 조롱만 사게 될 것을 염려하여,

故 略書一冊子 粗敍立心飭躬奉親接物之方 名曰擊蒙要訣 欲使學徒觀此 洗心立脚 當日下功 而余亦久患因循 欲以自警省焉, 丁丑季冬 德水李珥 書

간략하게 책을 쓰되 , 대략 마음을 세우고, 몸을 신칙(신칙)하여 부모를 봉양하며, 남을 접대하는 방법을 서술하여 ‘격몽요결’이라 이름해서 학도들로 하여금 이것을 읽고 마음을 씻게하며, 이를 근거로 하여 즉시 공부에 착수하게 하고, 나도 역시 오랬동안 그습에 얽매어 괴로워하던 차에 이것으로 스스로 경성하고자 하노라. 정축 늦겨울 덕수 이이 씀. 粗敍(거칠조, 차례서), 飭(갖출, 닦을 칙), 躬(몸궁, 몸소궁)

 

立志章 第一

 

初學 先須立志 必以聖人自期 不可有一毫自小退託之念,

처음 배우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 반드시 성인이 될 것을 스스로 기약학 것이요, 조금이라도 자기자신을 작게 여겨 물러가려는(退託) 생각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蓋衆人與聖人 其本性則一也, 일반 사람도 그 본성은 성인과 한가지일 것이다.

雖氣質 不能無淸濁粹駁之異 而苟能眞知實踐 去其舊染而復其性初 則不增毫末而萬善具足矣

비록 기질은 청, 탁, 수, 박의 다름이 없지 않겠으나, 참답게 알고 실천을 통하여 젖어 온 구습을 버리고, 그 본성을 되찾는다면, 털끝만큼도 보탬이 없이 만선이 충분히 갖춰질 수 있을 것이다.

衆人豈可不以聖人自期乎, 故孟子道性善 而必稱堯舜以實之曰 人皆可以爲堯舜 豈欺我哉

일반 사람이라도 성인이 될 것을 스스로 기약하지 아니하랴. 그러므로 맹자가 성선설을 주장하여 말마다 요, 순을 들어 실증하여 말하기를 ‘사람이면 모두 요,순이 될 수 있다.’ 하였으니 어찌 우리를 속였으랴.

當常自奮發曰 人性本善 無古今智愚之殊 聖人 何故獨爲聖人 我則何故獨爲衆人耶. 殊(죽이다. 정하다, 결심하다)

항상 스스로 분발하기를, ‘인성은 본래 착하여 고금으로 지, 우의 구별이 없거늘, 성인은 왜 홀로 성인이 되며, 나는 왜 홀로 중인이 되는가.

良由志不立 知不明 行不篤耳,

진실로 뜻이 서지 못하고, 밝게 알지 못하며, 행함리 독실치 못한 까닭이다.

志之立 知之明 行之篤 皆在我耳 豈可他求哉,

뜻을 세우는 것과, 밝게 아는 것과, 독실하게 행하는 것이 모두 내 자신에게 있는 것이지 어찌 다른 데서 구하랴.

顔淵曰 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 亦若是 我亦當以顔之希舜爲法

안연이 말하기를 ‘순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떻든 순과 같은 사람이 될수 있다.’ 하였는데 나도 안연이 순을 바라보는 바를 법도로 삼으려 한다.

人之容貌 不可變醜爲姸 膂力不可變弱爲强 身體 不可變短爲長 此則已定之分 不可改也 膂(등골 여, 근육의 힘 여)

사람의 용모는 추한 것을 곱게 할 수 없고, 체력은 약하더라도 강하게 할 수 없고, 키가 작더라도 크게 할 수 없는데, 이는 모두 사람들의 정해진 분수이기 때문에 고칠 수 없는 것이다.

惟有心志 則可以變愚爲智 變不肖爲賢 此則心之虛靈 不拘於稟受故也, 莫美於智 莫貴於賢 何苦而不爲賢智 以虧損天所賦之本性乎,

그러나 심지는 어리석다면 지혜롭게 고칠 수 있고, 불초하다면 현명하게 고칠 수 있는데, 기것은 마음의 잡념이 없이 신령스러움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바에 구애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고, 현보다 거 귀한 것이 없는데, 무엇이 괴로워 어질고 지혜롭게 되지 못하여 사람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본성을 손상시키겠는가. 虧損(이지러질 휴, 덜 손)

人存此志 堅固不退 則庶幾乎道矣

사람은 이런 뜻을 가지고 굳건히 물러서지 않아야 도에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凡人 自謂立志 而不卽用功 遲回等待者 名爲立志 而實無向學之誠故也,

보통 사람들은 스스로 뜻을 세웠다고 하면서도 힘쓰지 아니하고 주저하며 기다리는 자는 입지의 이름만 세웠으니, 사실은 성의것 배우겠다는 마음이 전혀 없는 까닭이다.

苟使吾志 誠在於學 則爲仁由己,欲之則至

진실로 나의 뜻이 학문에 있다면 착한 일을 하는 것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니 하고자 하면 되는 것이다.

何求於人 何待於後哉,

어찌 하고자 하면 곧 되는 것인데 남에게서 얻으려 하며 후일을 기다릴 필요가 있겠는가.

所貴乎立志者 卽下工夫 猶恐不及 念念不退故也, 如或志不誠篤 因循度日 則窮年沒世 豈有所成就哉

뜻을 세우는 것이 귀하다는 것은 공부를 시작하여 물러서지 말아야 된다는 것이니, 만일 뜻이 성실하지 못하여 그럭저럭 시일만 보낸다면 죽도록 무슨 성취가 있겠는가.

 

 

 

 

革舊習章 第二

 

人雖有志於學 而不能勇往直前 以有所成就者 舊習 有以沮敗之也, 舊習之目 條列如左 若非勵志通絶 則終無爲學之地矣. 勵(힘쓸려, 힘쓰다, 정진하다.)

사람이 비록 학문에 뜻이 있어 용맹스럽게 정진하여도 성취할 수 엇음은 구습이 있어서 방해하는 까닭이다. 구습의 조목을 아래와 같이 열거하니, 만일 뜻을 가다듬어 통렬히 절제하지 못한다면, 끝내 학문할 곳이 없는 것이다.

其一 惰其心志 放其儀形 只思暇逸 深厭拘束

뜻을 게으런데 두고 그 몸가짐을 함부로 하고, 다만 편히 노는데만 생각을 하고 구속되기를 싫어하는 것.

其二 常思動作 不能守靜 紛紜出入 打話度日

둘째, 항상 돌아다니기만 생각하고 조용히 안정하지 못하여, 분주히 드나들고 이야기로 세월을 보내는 것.

其三 喜同惡異 汨於流俗 稍欲修飭 恐乖於衆 惡(오)

汨(빠질 골, 잠기다. 물에 빠짐), 稍(벼줄기 끝 초, 점점 작다, 적다)

飭(신칙할 칙, 경계하다, 삼가다), 乖(어그러질 괴, 어기다, 경계하다.)

셋째, 같은 것을 즐기고 다른 것은 미워하여, 속된 무리들에 빠져 좀 빠져나려다가도 무리들에게 배반을 당할까 두려워하는 것.

其四 好以文辭 取譽於時 剽竊經傳 以飾浮藻

剽(빠를 표, 사납다, 위험하다), 竊(훔칠 절, 도둑, 몰래) 浮藻(뜰 부, 말 조)

넷째, 좋은 글을 떼어 내어 남에게 칭찬받기를 좋아하며, 경전을 표절하여 부조(서문의 기교를 말함)한 문체나 꾸미는 것.

其五 工於筆札 業於琴酒 優游卒歲 自謂淸致

筆札(붓 필, 패 찰), 優(넉넉할 우), 游(헤어질 유) 致(보낼 치)

다섯째, 할 일 없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노래와 춤이나 일삼고 편히 세상을 보내면서도 깨끗한 운치로 여기는 것.

其六 好聚閒人 圍棋局戱 飽食終日 只資爭競

여섯째, 한가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바득이나 도박을 즐기며 종일토록 다투기만 하는 것

其七 歆羨富貴 厭薄貧賤 惡衣惡食 深以爲恥

歆羨(받을 흠, 부러워할 선), 厭(싫을 염), 薄(엷을 박), 恥(부끄러워할 치)

부귀만 부러워하고 빈곤을 싫어하여 나쁜 음식과 나쁜 옷을 매우 수치로 여기는 것

其八 嗜慾無節 不能斷制 貨利聲色 其味如蔗,

여덟째, 즐기는 것에 절도가 없어 절제하지 못하여, 금전의 이와 노래와 여색에 젖어그 맛을 꿀맛과 같이 여기는 것. 嗜(즐길 기), 蔗(사탕수수자, 맛이좋다)

習之害心者 大槪如斯 其餘 難以悉擧, 此習 使人志不堅固 行不篤實 今日所爲 明日難改 朝悔其行 暮已復然 必須大奮勇猛之志 如將一刀 決斷根株 淨洗心地 無毫髮餘脈 而時時每加猛省之功 使此心無一點舊染之汚然後 可以論進學之工夫矣 悉(다실), 擧(들거, 오르다, 움직이다.)

구습이 이처럼 마음의 해가 되니, 더욱 그 나며지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이처럼 구습에 젖으면, 뜻을 굳건히 할 수 없게 되고 행실도 독싷하지 못하여, 오늘 한 것은 내일도 고치기 어려우며 아침에 후회하였던 행동도 저녁에는 다시 지지르게 되니, 모름지기 용맹스럽게 뜻을 크게 펴서 한 칼로 나무를 뿌리채 뽑아버리는 것처럼 마음을 깨끗이 씻고 털긑만한 것까지 없이 해서, 시시로 통렬히 반성하여 마음에 한점 구습의 해도 없게 한 연후에야 진학의 공부를 논할 수 있으리라.

 

 

持身章 第三

 

學者必誠心向道 不以世俗雜事 亂其志然後 爲學有基址, 故 夫子曰 主忠信 朱子釋之曰 人不忠信 事皆無實 爲惡則易 爲善則難, 址(터지)

학자는 반드시 성심으로 도에 향하고, 세속의 잡사로써 자기의 뜻을 흔들리지 않게 되어야만 학문의 기초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공자의 말씀에, ‘충과 신을 주로 하여야 한다.’ 하였는데 주자가 해석하기를, ‘사람이 충신하지 않으면 일이 모두 성실하지 못하여, 악을 하기는 쉬워도 선을 하기는 어렵다.’

故 必以是爲主焉 必以忠信爲主而勇下工夫然後 能有所成就 黃勉齋所謂眞實心地 刻苦工夫兩言 盡之矣

그러므로 반드시 이 충신을 주로 삼아야 한다. 하였으니, 반드시 충신을 위주로 하여 용감하게 공부를 시작한 후에 능히 성취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황면재가 이른바, ‘마음을 진실하고 성실히 하라.’ 또, ‘애써 공부하라.’등의 말도 다 이런 뜻이다.

常須夙興夜寐 衣冠必正 容色必肅 拱手危坐 行步安詳 言語愼重 一動一靜 不可輕忽苟且放過. 夙(일찍 숙),寐(잠잘 매),忽(소홀할 홀),苟(진실로 구),且(또차)

모름지기 항상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며, 의관을 바르게 하고 용모와 안색을 반드시 엄숙하게 하고 두 손을 바로 모으고 앉으며, 걸음 걸이는 점잖으며, 말은 신중히 하고, 모든 행동을 경솔히 하지 말고 또 방자스럽지도 않아야 할 것이다.

收斂身心 莫切於九容 進學益智 莫切於九思 斂(거들 렴)

몸과 마음을 가지는 데는 구용보다 더 절실한 것이 없고, 학문을 진취시키고 뜻을 더하는 데는 구사보다 더 절실한 것이 없다.

所謂九容者 足容重(不輕擧也 若趨于尊長之前則不可拘此). 趨(달릴 추)

이른 바, 구용이란, 걸음걸이는 무겁게 하라. (거동을 가법게 하지 말라, 만약 어른 앞에 갈 경우에도 구애되지 않아야 한다.)

手容恭(手無慢弛 無事則當端拱 不妄動)慢(게으를 만)弛(늦출 이)拱(두손맞잡을공)

손가짐을 공손히 하라.(손은 거만하거나 함부로 하지 말고 일이 없을 때는 단정히 모으로 분수 없이 움직여서는 안된다.)

目容端(定其眼睫 視瞻當正 不可流眄邪睇)

눈가짐은 단정히 하라. (눈을 똑바로 하고, 흘겨보거나 간사하게 보지 말아야 한다.) 睫(속눈썹 첩)瞻(볼첨)眄(애꾸눈면)睇(흘껏볼 제)

口容止(非言語飮食之時則口常不動)

입은 조용히 가지라.(말을 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聲容靜(當整攝形氣不可出噦咳等雜聲)

攝(당길 섭),噦(새소리 홰)咳(이린아이 웃을 해)

말소리는 조용히 하라(형기를 조섭해서 재치기나 가래침 등의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말아야 한다.)

頭容直(當正頭直身 不可傾回偏倚) 偏(치우칠 편),倚(의지할 의)

머리 가짐을 항상 곧게 하라.(머리를 항상 곧게 하고 몸은 한 쪽으로 기울이거나 비스듬하게 하지 말라)

氣容肅(當調和鼻息 不可使有聲氣)

숨쉬기를 정숙히 하라.(숨쉬기를 잘 조절하여 소리를 내서는 안된다.)

立容德(中立不倚儼然有德之氣像) 儼(의젓할 엄)

설 때는 덕스럽게 하라.(한쪽으로 비뚤어지게 서지 말고 똑바로 서서 덕스러운 모습이 있어야 한다.)

色容莊(顔色整齊 無怠慢之氣),

얼굴 모습은 장엄하게 하라. (얼굴 모습을 정제하여 태만한 기색이 없어야 한다.)

所謂九思者 視思明(視無所蔽則明無不見) 蔽(덮을 폐)

그리고 구사라는 것은, 보는 데는 밝게 할 것(보는 데 편견이나 욕심없이 바로 보면 밝아진다는 것)

聽思聰(聽無所壅則聰無不聞) 壅(막을 옹)

듣는 데는 총명스럽게 할 것.(듣는데 가리움 없다면 밝아진다는 것)

色思溫(容色和舒 無忿厲之氣) 舒(펼서),忿(성낼 분),厲(갈려)

안색은 온화하게 할 것.(안색은 온화하게 가지고 노한 티를 가지지 않는 것)

貌思恭(一身儀形 無不端莊) 儀(거동 의)

모습은 공손히 할 것(몸에 단정하지 않는 곳이 없게 하는 것)

言思忠(一言之發 無不忠信)

말하는 데는 충을 생각할 것(한마디 말을 하더라도 충신이 아닌 말은 하지 말것)

事思敬(一事之作 無不敬愼)

일나는 데는 경건을 생각할 것(한가지 일이라도 경건하지 않은 일은 하지 말것)

疑思問(有疑于心 必就先覺審問 不知不措)

의문이 있을 때는 물을 것(의심나는 것은 선각에게 물어서 반드시 알도록 할 것)

忿思難 (有忿必懲 以理自勝)

성나는 것은 참을 것(성이 나거든 이성으로 억제하여야 한다.)

見得思義(臨財必明義利之辨 合義然後取之), 辨(분별할 변)

이득은 의로운 것을 먼저 생각할 것(재물을 보고든 의리의 분별을 밝혀 의에 합당한 연후에 취할 것)

常以九容九思 存於心而檢其身 不可頃刻放捨 且書諸座隅 時時寓目, 檢(봉함 검)

항상 구용, 구사를 마음에 두고 몸을 살펴 잠시라도 방심하지 말고, 앉아 있는 곳에 써 두고 항상 보아야 할 것이다. 隅(모퉁이 우), 寓(머루를 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四者 修身之要也, 禮與非禮 初學 難辨 必須窮理而明之 但於已知處 力行之 則思過半矣

예가 아니거는 보지 말며, 예가 아니거든 듣지도 말며, 예가 아니거든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거든 움직이지 말라는 이 네가지 말은 수신하는 요점이다. 예가 아닌 것은, 초학자로서는 분별하기 어려우므로 반드시 이를 궁구하여 밝게 아는 데까지 힘써 행하는 것이 무방하다.

爲學 在於日用行事之間 若於平居 居處恭 執事敬 與人忠 則是名爲學 讀書者 欲明此理而已

학문하는 것은 일상생활에 있으니, 만일 평소에 거취가 공손하고, 하는 일이 공경하며, 남과 충으로 사귀면 공부한다고 할 것이, 글을 읽는 것은 이러한 이치를 밝히고자 할 뿐이다.

衣服 不可華侈 禦寒而已 飮食 不可甘美 救飢而已 居處 不可安泰 不病而已 惟是學問之功 心術之正 威儀之則 則日勉勉而不可自足也

의복은 사치할 것이 아니라 추위를 막는 정도면 되고, 음식은 맛 있는 것이 아니라 주림을 면할 정도면 되며, 거처는 편한할 것이 아니라 병나지 않을 정도면 된다. 오직 학문에 대한 공과, 마음을 바르게 함과, 예의의 법칙은 날마다 힘쓰고 힘쓰되 스스로 만족하는 생각을 가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

克己工夫 最切於日用 所謂己者 吾心所好 不合天理之謂也,必須檢察吾心 好色乎 好利乎 好名譽乎 好仕宦乎 好安逸乎 好安樂乎 好珍玩乎 凡百所好 若不合理 則一切痛斷 不留苗脈然後 吾心所好始在於義理 而無己可克矣

자기의 사욕을 이기는 공부가 가장 일상생활에 절실하다. 이른바 ‘기’라는 것은 내 마음이 천리에 합당하지 않는 것을 말한 것이니, 반드시 내 마음이 색을 좋아하는가, 이를 좋아하는가, 명예를 좋아하는가, 사간을 좋아하는가, 안일을 좋아하는가, 열락을 좋아하는가, 진미를 좋아하는가, 여러 가지로 살펴서 좋아하는 가은데에 이에 합당하지 않은 병통이 있으면, 한번에 모든 것을 깨끗이 없애 버리고 뿌리채 뽑아 버린 연후에야 내 마음이 좋아하는 것이 의리에 합당하여 기를 극할 수 있게 될 것이다.

仕宦(벼슬할 사, 벼슬환), 珍玩(보배진, 희롱할 완)苗脈(모묘, 맥맥),

多言多慮 最害心術 無事則當靜坐存心 接人則當澤言簡重 時然後言 則言不得不簡 言簡者近道. 簡(대쪽 간, 글, 책, 편지)

말 많고 생각 많은 것이 심술에 해로우니, 일이 없으면 정좌하여 존심하고, 남들을 접대할 때는 마땅히 말을 가려서 신중히 하여야 비로소 말을 할 때 분별할 수 있으니, 말을 분별한 자는 도에 가깝다.

非先王之法服 不敢服 非先王之法言 不敢道 非先王之德行 不敢行 此當終身服膺者也. 膺(가슴 응)

선왕의 법복이 아니면 감히 입지 못하고, 선왕의 법언이 아니면 감히 말하지 못하며, 선황의 덕행이 아니면 행하지 못한다는 것은 일생토록 명심해야 할 것이다.

爲學者一味向道 不可爲外物所勝 外物之不正者 當一切不留於心

학문하는 자는 한결같이 도에만 향해야 할 것이니, 외물이 지배하는 바가 있으면 안될 것이며, 바르지 못한 외물은 마당히 마음에 두지 말아야 한다.

鄕人會處 若設博奕樗蒲等戱 則當不寓目 逡巡引退 若遇倡妓作歌舞 則必須避去

고을 사람들이 모여서 만일 바둑이나 도박, 골패 등의 장난을 하거든 눈으로 보지도 말고, 물러나 피해야 할 것이며, 창기들이 가무라는 것을 보더라도 마땅히 피해 가야 할 것이다. 博奕(넓을 박, 클 혁, 바둑),樗蒲(가죽나무 저, 부들 포)

如値鄕中大會 或尊長强留 不能避退 則雖在座 而整容淸心 不可使奸聲亂色 有干於我

고을대회에서 고을 어른이 억지로 만류하여 피해 물러날 수 없거든, 비록 자리에 있더라도 용모를 바로하고 마음을 깨끗이 하여 간성과 난색이 나를 범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當宴飮酒 不可沈醉 浹洽而止可也, 凡飮食 當適中 不可快意有傷乎氣 言笑 當簡重 不可喧譁以過其節 動止 當安詳 不可粗率以失其儀

浹(두루미칠 협, 젖다, 적시다),洽(윤택할 흡, 적시다, 합치다)

연회에서 술을 마시더라도 너무 취하지 말고 알맞게 마신 뒤에 그치는 것이 옳고 무릇 음식에는 적당히 할 것이며, 구미대로 먹다가 기에 손상함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말과 웃음을 신중히 하여야 하며 경솔히 하여 법도를 잃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有事則以理應事 讀書則以誠窮理 除二者外 靜坐收斂此心 使寂寂無紛起之念 惺惺無昏昧之失 可也 所謂敬以直內者 如此. 惺(영리할 성)

어떤 일이 있으면 이로써 응해야 할 것이며, 글을 읽으면 정성을 다해 이를 궁구해야 한다. 이 두가지 외에도 정좌하고 마음을 다듬어 정적하여 분기하는 생각이 없이 항상, 깨치고 혼미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른바, ‘경으로 마음을 곧게 하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當正身心 表裏如一 處幽如顯 處獨如衆 使此心如靑天白日 人得而見之

마땅히 몸과 마음을 곧게 하여 안팎이 같아야 하며 그윽한 데서도 드러난 데서와 같이 하며, 혼자 있을 때에도 여러 사람이 있을 때와 같이하여 마음을 맑게 갵 밝은 하늘을 보는 것처럼 사람들이 볼수 있게 하여야 한다.

常以行一不義 殺一不辜而得天下 不爲底意思 存諸胸中

항상 ‘한가지의 불의를 행하고, 한사람의 무죄한 이를 죽여서 천하를 얻을지라도 하지 않는다.’는 뜻을 가슴 속에 두어야 할 것이다.

거하고 그 근본을 세우며, 이치를 궁구하여 선에 밝으며, 힘써 행하여야 실을 행할 수 있으니, 이 세가지는 일생동안의 일이다.

思無邪 母不敬只此二句 一生受用 不盡 當揭諸壁上 須臾不可忘也

생각에 사특함이 없을 것과 공경하지 않음이 없을 것의 두 구절은 일생 동안 애용하여도 다하지 못할 것이다. 마땅히 벽 위에 걸어 두고 잠깐이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揭(들 게, 걸다), 須(모름지기 수, 마땅히),臾(잠깐 유)

每日 頻自點檢 心不存乎 學不進乎 行不力乎 有則改之 無則加勉 孜孜母怠 斃而後已. 孜(힘쓸 자), 斃(넘어질 폐, 넘어져 죽다)

마음이 존하지 않는가, 배움이 진전되지 않는가, 행하기를 힘쓰지 않는가 하고 자주 매일 점검하여 이런 점이 있거든 고치고, 없거든 더욱 힘써서 죽을 때까지 부지런히 하고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讀書章 第四

 

學者常存此心 不被事物所勝 而必須窮理明善然後 當行之道 曉然在前 可以進步, 曉(새벽 효)

배우는 자는 항상 이 마음을 보존하여 사물이 이기는 바가 되지 않게 하고, 모름지기 이치를 궁리하여 선을 밝힌 연후에야 마땅히 행할 도가 뚜렷하게 앞에 있어 진보할 수 있게 된다.

故 入道莫先於窮理 窮理莫先乎讀書 以聖賢用心之迹 及善惡之可效可戒者 皆在於書故也 迹(자취 적, 발자취)

그러므로 도에 들어가는 데 이치를 궁구하는 것보다 더 먼저 할 것이 없으며, 이치를 궁구하는 데 있어 독서를 하는 것보다 먼저 할 것이 없으니, 이것은 성현의 마음을 쓴 자취와 선악의 본받을 만한 것, 경계할 만한 것이 모두 책에 있기 때문이다.

凡讀書者 必端拱危坐 敬對方冊 專心致志 精思涵泳(涵泳者 熟讀深思之謂) 深解義趣 而每句 必求踐履之方 若口讀而心不體 身不行 則書自書 我自我 何益之有.

무릇 독서를 하는 자는 반드시 단정하게 팔짱을 끼고 무릎을 꿇고 바르게 앉아, 삼가 공경하여 책을 대하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극진히 하여 생각을 가려 정밀히 하며, 함영하여(함영이란 것은 숙독하고 깊이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그 의미를 깊이 풀이해 내어 구절마다 반드시 그 실천할 방법을 구할 것이다. 만일 입으로만 읽고, 마음으로 체득하지 못하고 몸으로 행하지도 못한다면 글은 저대로 글일 뿐이요, 또한 나는 나대로 나일 뿐으로 아무런 끼침이 없을 것이니 무슨 이익이 있을 것인가.

先讀小學 於事親 敬兄 忠君 弟長 隆師 親友之道 一一詳玩而力行之

먼저 소학을 읽어 부모를 섬기고, 형을 공경하며, 임금에게 충성하고, 웃어른에게 순종하며, 스승을 높이고, 벗을 친하는 도리를 하나하나 자세히 음미하여 이를 힘써 행하여야 한다. 隆(클 융, 두텁다. 높다) 祥(상서러울 상, 복, 좋다)玩(희롱할 완, 사랑하다, 가지고 놀다)

次讀大學及或問 於窮理 正心 修己 治人之道 一一眞知而實踐之

그 다음에는 대학 및 혹문을 읽어서 이치를 궁구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며 몸을 닦고 사람을 다스리는 도리를 하나하나 참으로 알아내어 이를 실천하여야 한다.

次讀論語 於求仁爲己 涵養本原之功 一一精思而深體之

다음에는 논어를 읽어서 인을 구하고 ‘다른 이의 이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학문의 본원을 함양하는 공부를 하나하나 자세히 생각하여 깊이 체득하여야 한다.

次讀孟子 於明辨義利 遏人慾 存天理之設 一一明察而擴充之

다음에는 맹자를 읽어 의리를 밝게 분변하여 인욕을 막고 하늘의 이치를 보존하는 설을 하나하나 밝게 살펴서 이를 넓혀 가득히 채워서 완전하게 하여야 한다. 遏(막을 알, 중지하다. 누르다)

次讀中庸 於性情之德 推致之功 位育之妙 一一玩索而有得焉

다음에는 중용을 읽어서 성정의 덕과 미루어 이르는 공과 위육의 묘를 하나하나 음미하여 그 뜻을 찾아내어야 한다. 推(옳을 추,천거하다)致(보낼 치, 바치다)

次讀詩經 於性情之邪正 善惡之褒戒 一一潛釋 感發而懲創之

다음에는 시경을 읽어서 성정의 그릇됨과 올바름, 선악을 가려 표창하고 경계함을 하나하나 깊이 궁구하여 감동 분발함으로써 이를 징계하여야 한다.

次讀禮經 於天理之節文 儀則之度數 一一講究而有立焉

다음에는 예경을 읽어서 하늘의 이치의 절문-알맞게 갖춤-과 의측-사람이 지켜야 할 법측- 의 도수-정해진 법도- 에 하나하나 그 이치를 궁구하여 서는 바가 있어야 한다.

次讀書經 於二帝三王治天下之大經大法 一一領要而遡本焉

다음에는 서경을 읽어 2제-요,순- 3왕-하우왕, 은탕왕, 주의 문왕과 무왕-이 천하를 다스린 대경륜과 큰법에 하나하나 요령을 얻고 그 근본을 소급해서 구할 것이다.

次讀易經 於吉凶存亡進退消長之幾 一一觀玩而窮硏焉

다음에는 주역을 읽어서 길흉, 존망, 진퇴, 성쇠의 기미를 하나하나 관찰 음미하여 연구해야 할 것이다.

次讀春秋 於聖人賞善罰惡 抑揚操縱之微辭奧義 一一精硏而契悟焉

다음에는 춘추를 읽어 성인의 착한 것은 상을 주고, 악한 것은 벌하여 어던 이는 억누르고 어떤이는 드높여 주어 조조아는 은근한 말과 심오한 뜻을 하나하나 정밀히 연구하여 간절히 깨달아야 한다.

五書五經 循環熟讀 理會不已 使義理日明 而宋之先正所著之書 如近思錄 家禮 心經 二程全書 朱子大全 語類 及他性理之說 宜間間精讀 使義理常常浸灌吾心 無時間斷 而餘力 亦讀史書 通古今 達事變 以長識見 若異端雜類不正之書 則不可頃刻披閱也

이상과 같은 5서와 5경을 돌려가면서 익혀 읽음으로써 사리를 깨달아 마지아니하면 의리가 나날이 밝아질 것이요, 송나라 때의 선현들이 지은 근사록, 가례, 심경, 이전전서, 주자대전, 주자어록과 같은 서적과 그밖에 성리학설을 틈틈이 정독하여의리가 항상 내 마음을 적시고, 끊임없이 주입되도록 하며, 남은 힘으로는 역사를 읽어 고금의 역사적 사건의 변천을 통달하여 식견을 기를 것이요, 잠시라도 이단이나 잡되고 옳지 못한 서적을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凡讀書 必熟讀一冊 盡曉義趣 貫通無疑然後 乃改讀他書 不可貪多務得 忙迫涉獵也. 曉(새벽효, 깨닫다)趣(달릴 취, 미치다) 忙(바쁠 망)迫(닥칠 박, 다그치다)涉(건널섭, 이르다)獵(사냥엽, 사로잡다)

무릇 독서를 하되 반드시 책한권을 선택하면 숙독하여 뜻을 모두 알아 통달하여 의심이 없게 된 후에 다른 책으로 바꿔 읽을 것이요, 다독에만 힘을 써서 이것저것 바삐 읽어서는 안된다.

 

事親章 第五

 

凡人 莫不知親之當孝 而孝者甚鮮 由不深知父母之恩 故也,時不云乎 父兮生我 母兮鞠我 欲報之德 昊天罔極

무릇 사람된 자로 어버이에게 마땅히 효도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으되, 실제로 효도를 하는 이가 매우 드문 것은 어버이의 은혜를 깊이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시경에 이르지 않았는가. 어버지는 아를 낳으시고 어머니는 나를 기르셨으니, 이 은덕을 갚고자 할진대 하늘과 같이 넓고 끝이 없도다,

人子之受生 性命血肉 皆親所遺, 喘息呼吸 氣脈相通 此身 非我私物 乃父母之遺氣也, 喘(기침 천, 숨, 호흡)

인자가 태어남을 받아 목숨과 혈육이 모두 어비이의 끼치신 바요, 숨을 쉬고 기와 맥이 어버이와 자식이 서로 통하니 이 몸이 내 사사로운 것이 아니요, 바로 부모가 남긴 기이다.

古 曰 哀哀父母 生我劬勞 父母之恩 爲如何哉, 豈敢自有其身 以不盡孝於父母乎,人能恒存此心 則自有向親之誠矣. 劬(수고로울 구,바쁘게 일하다.)

그러므로 시경에 슬프도다. 부모께서 나를 낳아 기르시기에 수고로왔으니 부모의 은혜를 어이하랴. 하였은제 어찌 감히 스스로 제몸이라 하여 부모에게 효를 다하지 아니하겠는가. 사람마다 항상 이 마음을 보존할 수만 있다면 스스로 어버이에 대한 섬김이 성실해 질 것이다.

凡事父母者 一事一行 毋敢自專 必稟命而後行 若事之可爲者 父母不許 則必委曲陳達 頷可而後行 若終不許 則亦不可直遂其情也.

稟(줄 품, 주다, 받다)委(맡길 위)陳(늘어놓을 진, 펴다)頷(턱 함. 끄덕이다)

무릇 부모를 섬기는 자는 한 가지 일, 한 가지 행동이라도 감히 제뜻대로 하지 말고 반드시 명령을 받은 후에 행할 것이요, 만일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할지라도 부모가 허학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상세히 설명을 드려서 승낙을 얻은 후에 행하되 만약 끝내 허락하지 않더라도 제 의사대로 곧장 밀고 나가서는 안 될 것이다.

每日未明而起 盥櫛依帶 就父母寢所 下氣怡聲 問燠寒安否 昏則詣寢所 定其褥席 察其溫凉 日間侍奉 常愉色婉容 應對恭敬 左右就養 極盡其誠 出入 必拜辭拜謁. 盥櫛(대야 관, 빗 즐)怡聲(기쁠 이, 소리 성)燠(따뜻할 욱)詣(이를 예)褥(요욕)愉(즐거울 유)婉(순할 완, 예쁘다)謁(아뢸 알, 고하다)

날마다 밝기 전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머리를 빗고 의관을 갖춘 후에 부모의 침소에 나아가 기색을 낮추고 음성을 부드럽게 하여 덥고 추운 것에 안부를 여쭙고, 날이 저물어 어두워지면 부모의 침소에 가서 이부자리를 보아드리고 덥고 추운 것을 살피며, 곁에서 모실 때에는 항상 화평하고 기쁜 안색으로 공경스럽게 응대하여 매사 제 성의를 극진히 하여 받들어 모시되 출입할 때에는 반드시 절하고 말씀드려야 한다.

05-04 今人 多是被養於父母 不能以己力養其父母 若此奄過日月 則終無忠養之時也,必須躬幹家事 自備甘旨然後 子職乃修

奄(가릴 엄)躬(몸 궁, 몸소 행하다)幹(줄기 간, 체구)旨(맛있을 지)

지금 사람들은 흔히 부모에게 의지하고 자기의 능력으로 제 부모를 봉양하지 못하니, 만약 이렇게 세월만 보내다 보면 종내 부모를 모실 때가 없을 것이다. 반드시 집안 일을 맡아 스스로 부모을 봉양하는 일을 다 한 연후에 자식된 직분을 바로 닦는 것이다.

若父母堅不聽從 則雖不能幹家 亦當周旋補助 而盡力得甘旨之具 以適親口 可也, 若心心念念 在於養親 則珍味 亦必可得矣, 每念王延 隆冬盛寒 體無全衣 而親極滋味 令仁感歎流涕也 隆(클융, 극진하다)

만일 부모가 굳이 듣지 않으시면 비록 집안 일을 맡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마땅히 뒤를 보살펴 도와 드려서 부모에게 잡수실 것을 찾추기에 극진히 하여 구미에 맞도록 하여야 할 것이니, 만일에 생각마다 부모 봉양에 있다면 산해 진미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매양 왕연이 엄동설한에 성한 옷 한 벌도 없으면서 극진히 부모에게 맛있는 음식을 드렸음을 생각할 때 마다 감탄하는 눈물이 흐른다.

人家父子間 多是愛逾於敬 必須痛洗舊習 極其尊敬 父母所坐臥處 子不敢坐臥 所接客處 子不敢接私客 上下馬處 子不敢上下馬 可也. 逾넘을유

보통 아버지와 자식의 사이에 흔히 사랑이 공경보다 지나치니, 철저히 구습을 씻어버리고 그 존경함을 극진히 하여 부모가 앉거나 누얼 계시던 곳에 자식이 감히 앉거나 눕지 않을 것이요, (부모께서) 손님을 맞이하던 곳에 자식이 감히 앉거나 눕지 않을 것이요, (부모께서) 말을 타고 내리는 곳에서 (자식이)감히 말을 타고 내려서는 아니된다.

父母之志, 若非害於義理 則當先意承順 毫忽不可違 若其害理者 則和氣怡色柔聲以諫 反覆開陳 必期於聽從. 毫(가는털 호, 조금, 붓),忽(소홀히 할 홀)

부모의 뜻이 만약 의리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면 마땅히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받들어 추호라도 어기지 말 것이요 만일에 의리를 해치는 것이라면 화평하고 부드러운 기색과 말소리로 거듭해서 아뢰어 반드시 들으시도록 할 것이다.

父母有疾 心憂色沮 捨置他事 只以問醫劑藥爲務 疾止 復初. 沮(막을 저)

부모께서 병환이 있으시면 마음으로 근심하고 기색이 저상되어 다른 일을 제쳐놓고 오로지 의사에게 묻고 약을 지어 오는 것으로 일을 삼아서 병환이 회복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日用之間, 一毫之頃 不忘父母然後 乃名爲孝 彼持身不謹 出言無章 嬉戱度日者 皆是忘父母者也. 章(글 장, 문장)

일상생할에 있어 순간이라도 부모를 잊지 않은 연후에야 바로 효도한다고 이름할 수 있으니, 제 몸가짐이 근실하지 못하고 말하는 것에 법도가 없으며 날로 즐겨 놀기만 하는 자는 모두 부모를 잊는 자이다.

日月 如流 事親 不可久也, 故 爲子者 須盡誠竭力 如恐不及 可也, 古人詩曰 古人一日養 不以三公換 所謂愛日者 如此 竭(다할 갈)換(바꿀 환)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아 부모를 섬김은 오래 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식된 자는 모름지기 정성과 힘을 다하여 (항상 제 능력을 다해 섬기면서) 그래도 (정성과 힘이) 미치지 못하지나 않는가 하듯 해야 한다. 옛사람의 시에, ‘하루의 부모 봉양은 삼공의 부귀와 바꿀 바가 아니다.’고 하였은 즉 이른바, ‘해를 아낀다,’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이다.

 

喪制章 第六

 

喪制 當一依朱文公家禮 若有疑晦處 則質問于先生長者識禮處 必盡其禮 可也

상제는 마땅히 주문공의 가례에 의할 것이로되, 만일 의심되거나 모르는 것이 있으면 먼저 예를 아는 웃어른에게 물어서 반드시 그 예를 다하는 것이 옳다.

復時 俗例必呼小字 非禮也, 少者則猶可呼名 長者則不可呼名 隨生時所稱 可也 (婦女尤不宜呼名)

목할 때에는 관례로 반드시 이름을 부르는데 이것은 예가 아니다. 젊은 이에게는 그레도 그 이름을 불러도 되지만, 어른일 경우에는 이름을 불러서는 안되며 살아 계셨을 적에 부르던 대로 호칭하여야 한다.(더구나 부녀일 때에는 더욱이 이름을 불러선 아니된다.)

母喪 父在則父爲喪主 凡祝辭 皆當用夫告妻之例也

아버지가 살아 계시고 어머니의 상을 당하였으면 아버지가 상주가 되고, 무릇 축문에는 모두 지아비가 지어미에게 고하는 예를 써야 할 것이다.

父母初沒 妻妾婦及女子 皆被髮 男子則被髮扱上衽徒跣(小斂後男子則袒括髮婦人則髽) 若子爲他人後者 及女子已嫁者 皆不被髮徒跣(男子則免冠)

沒(가라앉을 몰) 衽(옷깃 임)徒(무리도)跣(맨발 선) 袒(웃통벗을 단)括(묶을 괄)髽(북상투좌, 부인이 상중에 묶는 머리)

부모가 처음 돌아가시면 처첩과 며느리 등 여자들은 모두 머리를 풀며, 남자는 머리 풀고 옷깃을 걷어 헤치며 발을 벗어야 할 것이요,(소렴후에는 남자는 袒(웃통벗을 단)括(묶을 괄)하고 팔발하며, 부녀는 북항투 쪽을 짠다.) 만약 양자이거나 시집을 간 여자는 모두 머리를 풀거나 맨발을 벗지 않는다.

尸在牀而未殯 男女位于尸傍 則其位南上 以尸頭所在爲上也 旣殯之後 女子則依前位于堂上 南上 男子則位于階下 其位堂北上 以殯所在爲上也 發引時 男女之位 復南上 以靈柩所在爲上也 隨時變位而各有禮意 牀(평상 상, 침상)殯(염할 빈)

시체가 방에 있고, 빈을 아직하지 않았을 때에 남녀가 시체의 곁에 있게 되면, 그 위치의 차례가 남쪽을 위(上)로 할 것이니, 니는 시체의 머리가 있은 곳(북쪽)을 위로 하기 대문니다. 빈(殯)한 후에는 여자는 먼저 전대로 당상의 남쪽 위에 위치할 것이요, 남자는 계하에서 북을 위로할 것이니, 이는 빈소가 있는 곳(북쪽)을 위로 하기 때문이요, 발인할 때에는 남녀의 석차가 다시 남쪽을 위로 할 것이니, 이것은 영구의 소재를 위로 삼기 때문인데, 때에 따라서 위치를 변하는 것은 각기 예의 뜻이 있는 것이다.

今人 多不解禮 每弔客致慰 專不起動 只俯伏而已 此非禮也, 弔客 拜靈座而出 則喪者當出自喪次 向弔客 再拜而哭 可也(弔客當答拜) 俯伏(구부릴 부, 엎드릴 복)

지금 사람들은 흔히 예를 이해하지 못하고 조객이 위문할 때마다 전혀 기동하지 않은 체 그저 엎드려 있기만 하는데 이것은 예가 아니다. 조객이 영전에 절하고 나여면 상주도 의당히 상차에서 나와 조객에게 두 번 절하고 곡을 해야 옳다. (조객은 마땅히 답배해야 한다.)

衰(최)絰 非疾病服役 則不可脫也

衰(쇠할 쇠)絰(질질-상복을 입을 때 머리에 쓰는 수질과 허리에 두르는 요질)

최질(상복)은 질병이 있거나 일할 때가 아니고서는 벗을 수가 없다.

家禮 父母之喪 成服之日 始食粥 卒哭之日 始疏食(糲飯也) 水飮(不食羹也) 不食菜果 小祥之後 始食菜果(羹亦可食) 禮文如此 非有疾病 則當從禮文 人或有過禮而啜粥三年者 若是誠孝出人 無一毫勉强之意 則雖過禮 有或可也 若誠孝未至 而勉强踰禮 則是自欺而欺親也 切宜戒之

粥(죽죽), 糲(현미려)飯(밥반), 羹(국갱) 踰(넘을유)

가례에 부모의 상에는 성복하는 날에야 비로소 죽을 먹고, 졸곡하는 날에야 비로소 소식(현미로 지은 밥)을 하며, 물만 마시고,(국을 먹서선 안된다.) 채소와 과실은 먹지 않으며, 소상이 지난 후에 비로소 채소와 과실을 먹어도 되고, 국도 먹을 수 있다. 예문이 이와 같으니, 병이 나지 않았으면 마땅히 예문대로 쫓아야 할 것이다. 어떤 이는 예가 지나쳐서 3년동안이나 죽을 먹었는데 만일에 그가 참으로 효성이 남보다 뛰어나고 털끝만치도 억지로 하는 뜻이 없다면, 비록 예에 지니치기는 하지만 오히려 혹 옳다 하겠으나, 만일에 효성이 지극하지 못하면서 지나치게 예를 억지로 차린다면 이는 제 자신을 속이고 어버이를 속이는 것이니 마땅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今之識禮之家 多於葬後返魂 此固正禮 但時人效顰 遂廢廬墓之俗 返魂之後 各還其家 與妻子同處 禮坊大壞 甚可寒心 凡喪親者 自度(탁)一一從禮 無毫分虧欠 則當依禮返魂 如或未然 則當依舊俗廬墓 可也 顰(찡그릴 빈)廬(오두막집 려) 坊(동네 방)壞(무너질 괴)虧(이지러질 휴)欠(하품흠, 모자라다)

오늘날 예를 아는 집에서 흔히 장례 후에 반혼하는데, 이는 진실로 바른 예이기는 하나, 세속 사람들이 형식만 차려 마침내 시묘살이 하는 풍속을 폐지하고 반혼한 후에는 제각기 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동거하니, 예법의 무너짐이 매우 한심스럽다. 무릇 어비이의 상을 당한 자가 스스로 헤아려서 일일이 예를 쫒아서 털끝만치라도 분수에 모자람이 없다면, 마땅히 예법에 의하여 반혼할 것이요, 그렇지 못할 것 같으면 옛 풍속대로 시묘살이 하는 것이 옳다.

親喪 成服之前 哭泣 不絶於口(氣盡則令婢僕代哭) 葬前 哭無定時 哀至則哭 卒哭後則朝夕哭二時而已 禮文 大槪如此 若孝子情至 則哭泣 豈有定數哉, 凡喪 與其哀不足而禮有餘也 不若禮不足而哀有餘也 喪事 不過盡其哀敬而已

부모상에, 성복전에는 울음이 입에서 끊어지지 않아야 하며, 기진하면 남녀 하인들을 시켜서 대신으로 곡하게 한다. 장례를 치르기 전에는 때를 정하지 않고 슬픔이 지극하면 곡을 할 것이며, 졸곡 후에는 아침, 저년 두 때에만 곡을 할 뿐이다. 예문이 대개 이와 같으니, 만일에 효자의 정이 지극하다면 곡함에 어찌 정한도가 있을 것이냐, 무릇 상사에 있어서 애통함이 부족하고 예가 도리어 남음이 있도록 과분한 것보다는 차라리 예가 부족하더라도 애통함이 남음이 있는 것이 나으니, 상사는 그 애통함과 공경함을 다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曾子曰 人未有自致者也 必也親喪乎 送死者 事親之大節也 於此 不用其誠 惡(오)乎用其誠, 昔者 小連大連 善居喪 三日不怠 三月不懈 期悲哀 三年憂 此是居喪之則也, 孝誠之至者 則不勉而能矣 如有不及者 則勉而從之 可也

懈(게으를 해)

증자는 말하기를, ‘사람이 스스로 지극해야 할 것이 있지 아니하며, 반드시 친상에는 지극해야 할 것이다.’ 하였으니, 죽음을 보내는 것은 어버이를 섬기는 큰 마디이다. 여기에 그 정성을 쓰지 않는다면 어디에 그 정성를 쓰겠는가. 옛날에 소련, 대련이 거상을 잘하여 사흘 동안 태만하지 아니하고 석달 동안 게으르지 아니하며, 기한이 다할 동안 슬퍼하고 3년을 근심하리니, 이것이 거상하는 법이다. 효성이 지극한 이는 힘쓰지 않아도 능히 할 수 있을 것이요, 효성이 미치지 못할 것 같으면 힘써서 이를 쫒아야 할 것이다.

人之居喪 誠孝不至 不能從禮者 固不足道矣 間有質美而未學者 徒知執禮之爲孝 而不知傷生之失正 過於哀毁羸疾已作 而不忍從權 以至滅性者 或有之 深可惜也, 是故 毁瘠傷生 君子謂之不孝

毁(헐훼, 상처를 입히다.)羸(야윌 리, 앓다)滅(멸망할 멸)瘠(파리할 척, 여위다)

사람이 거상을 하는데 효성이 지극하지 못하여 예를 쫒을 수 없는 자는 진실로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간혹 가다가 자질은 훌륭하면서 배우지 못한 자가 한갓 예를 지키는 것만이 효도하는 것인 줄 알고, 심신을 상하는 것이 바름을 잃어버리는 것임을 알지 못하여, 너무 과도히 슬퍼하다가 쇠약해져서 몸에 병이 생겨도 차마 권도(병이 있으면 육식을 하는 것)를 쫒지 못하고 목숨을 잃어버리는 자도 있으니 매우 애석한 일이다. 이런고로, 너무 슬퍼하다가 몸이 쇠약해져서 목숨을 상하는 것을 군자는 불효라고 하였다.

凡有服親戚之喪 若他處聞訃 則設位而哭 若奔喪 則至家而成服 若不奔喪 則四日成服,若齊衰之服 則未成服前三日中 朝夕爲位會哭(齊衰降大功者亦同)

무릇 복을 입어야 할 친척의 상사에 만일 다른 곳에 있어서 부음을 들었다면 위패를 차리고 곡을 할 것이요, 奔喪을 하면 집에 이르러 성복을 하되, 분상하지 못하게 된다면 나홀만에 성복하고, 재최의 복이라면 성복하기 전 사흘동안 아침저녁을 위패를 차리고 곡을 하여야 한다. (재최로서 대공에 강한 자도 역시 이와 같다.)

師友之義重者 及親戚之無服而情厚者 與凡相知之分密者 皆於聞喪之日 若道遠 不能往臨其喪 則設位而哭,師則 隨其情義深淺 或心喪三年 或期年 或九月 或五月 或三月 友則雖最重 不過三月,若師喪 欲行三年期年者 不能奔喪 則當朝夕設位而哭 四日而止(止於四日之朝 若情重者則不止此限)

스승이나 벗으로서 의리가 중한 자와 친척으로서 복은 없어도 정이 두터운 자와, 무릇 서로 지면이 있으면서 교분이 친밀한 자는 부음을 듣은 날에 모두 그날로 문상을 해야 한다. 만일 길이 멀어 갈 수가 없다면 있는 곳에서 위패를 차려놓고 곡을 할 것이다. 스승은 그 정과 의리의 깊고 얕음을 따라서 심상을 3년, 혹은 기년, 혹은 9개월, 혹은 3개월간 할 것이요, 벗의 상례는 평소에 가장 교분이 깊다 하더라도 3개월에 지나지 못한다. 스승의 상에 3년 기년을 행하고자 하는 이로 분상을 하지 못하면 아침, 저녁으로 위패를 차리고 곡을 하되 나흘 만에 그칠 것이다.(나흘되는 날 아침에 그칠 것이다. 만약 정이 깊은 자라면 이에 한하지 않는다.)

凡遭服者 每月朔日 設位服其服而會哭(師友雖無服亦同) 月數旣滿 則於次月朔日 設位服其服 會哭而除之 其間哀至則哭 可也 遭(만날 조, 피동의 뜻)

무릇 복을 당한 자는 매달 삭일에 위패를 차리고 그 복을 입고서 회곡할 것이다. (스승이나 벗은 비록 복은 없어도 이와 마찬가지로 한다.)달수가 모두 차면 다음달 삭일에 위패를 차리고 그 복을 입고 회곡을 하고 나서 치우는데 그 동안에 슬픔이 복받치면 곡을 해도 좋다.

凡大功以上喪 則未葬前 非有故 不可出入 亦不可弔人 常以治喪講禮爲事

무릇 대공 이상의 상에는 장사를 치르기 전에 연고없이 출입하지 말아야 하며, 또한 남의 상사에 조상하지도 말고 항상 상사를 다스리고 예를 강구하기만 일삼을 것이다.

 

祭禮章 第七

 

祭祀 當依家禮 必立祠堂 以奉先主 置祭田 具祭器 宗子主之

제사는 마땅히가례에 의해서 반드시 L사당을 세워 선조의 신주를 모시며, 제전을 두고 제기를 갖추어 종자가 주장할 것이다.

主祠堂者 每晨 謁于大門之內 再拜(雖非主人 隨主人 同謁無妨) 出入 必告

사당을 받드는 자는 매일 새벽에 대문 안에서 뵈옵고 재배하며 출입할 때는 반드시 고하여야 한다.(주인이 아니라도 주인을 따라 뵈옵는 것은 무방하다)

或有水火盜賊 則先救祠堂 遷神主遺書 次及祭器 然後及家財

혹 수재나 화재가 발생하거나 도적이 들면 먼저 사당을 구하여 신주와 유서를 옮기고, 다음에 제기를 치운 뒤에 집안의 재물을 구하여야 한다.

正(正朝) 至(冬至) 朔(一日) 望(十五日) 則參(참) 俗節則薦以時食

정월 초하루와 동지, 초하루와 보름에는 참예하고 속절(단오, 추석 등)에는 시식을 올려야 한다.

時祭則散齊四日 致齊三日 忌祭則散齊二日 致齊一日 參禮則齊宿一日 所謂散齊者 不弔喪 不問疾 不茹葷 飮酒不得至亂 凡凶穢之事 皆不得預(若路中 猝遇凶穢則掩目而避 不可視也) 所謂致齊者 不聽樂 不出入 專心想念所祭之人 思其居處 思其笑語 思其所樂(요) 思其所嗜之謂也,夫然後 當祭之時 如見其形 如聞其聲 誠至而神享也 茹(먹을 여)葷(매운채소 훈)穢(더러울 예)預(미리예, 간여하다, 즐기다)掩(가릴 엄)

시제(2,6,8,11월)에는 산재 4일, 치재 3일을 하고, 기재에는 산재 2일, 치재 1일을 하며, 참례에는 재숙 1일을 하는데 이른바 산재라는 것은 남의 상사나 병에 조상하거나 문병을 가지 아니하고 훈체(파, 마늘 등의 냄새나는 음식)를 먹지 않으며, 술릉 마시더라도 취할 정도까지 마시지 않고, 무릇 흉하고 더러운 일에는 모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길에서 흉하거나 더러운 것을 만나거든 눈을 가리고 피하며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른바 치재라는 것은 음악을 듣지 않고 출입하지 아니하며, 애오라지 제사를 받을 분만 염두에 두되, 그 분이 생전에 서하시던 곳을 생각하고, 웃고 말씀하시던 일을 생각하며, 평소에 좋아하시던 것을 생각하고, 즐기시던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연후에야 제사를 드릴 때에 얼굴을 보는 듯하고, 음성을 듣는 듯하여 정성이 지극해져서 신령이 흠향하실 것이다.

凡祭 主於盡愛敬之誠而已 貧則稱家之有無 疾則量筋力而行之 財力可及者 自當如儀 量(헤아릴 양)

무릇 제사는 사랑과 공경으로 정성을 다하는 것을 위주로 할 뿐이다. 가난하면 가산의 규모에 따라 하고, 병이 있으면 제 근력을 헤아려서 제사를 드릴 것이며, 재력이 미치는 자는 자연 마땅히 예법대로 행할 것이다.

墓祭 忌祭 世俗 輪行 非禮也, 墓祭則雖輪行 皆祭于墓上 猶之可也, 忌祭 不祭于神主 而乃祭于紙榜 此甚未安, 雖不免輪行 須具祭饌 行于家廟 庶乎可矣

묘제와 기제는 세속에서 돌려가며 가손들이 지내는데 이것은 예가 아니다. 묘제는 비록 돌려가며 지내더라도 다 같이 묘에 가서 지내므로 오히려 괜찮지만 기제는 신주에 제사하지 않고서 지방을 붙이고 제사를 드리니 이것은 매우 미안한 일이다. 비록 돌려가며 제사를 드리더라도 모름지기 제찬을 갖추어 가묘에서 지낸다면 혹 옳을 것이다.

喪祭二禮 最是人子致誠處也,已沒之親 不可追養 若非喪盡其禮 祭盡其誠 則終天之通 無事可寓 無時可洩也 於人子之情 當如何哉,曾子曰 愼終追遠 民德歸厚矣 爲人子者 所當深念也 洩(샐설)

상과 제의 두 예는 인자로서 가장 정성을 다해야 하는 곳이다. 이미 돌아가신 어버이를 또다시 봉양할 수는 없으매, 만일에 상사에 그 예를 다하지 않고 제사에 그 정성을 다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그 애통을 부칠 일이 없을 것이요, 애통을 덜 때가 없을 것이니, 자식의 정이 의당 어떠하겠는가. 증자는 말하기를 ‘신종하고 추원하면 미덕이 후한 곳을 돌아간다.’ 하였으니, 이는 사람으로서 깊이 생각할 바이다.

今俗 多不識禮 其行祭之儀 家家不同 甚可笑也, 若不一裁之以禮 則終不免紊亂無序 歸於夷虜之風矣, 玆鈔祭禮 附錄于後 且爲之圖 須詳審倣行 而若父兄不欲 則當委曲陳達 期於歸正

虜(포로로, 오랑캐, 하인)茲(무성할 자, 더욱, 돗자리)鈔(노략질 할 초, 베끼다)

오늘날 풍속이 예를 알지 못하여 제사를 지내는 법이 집집마다 같지 아니하니 매우 가소롭다. 만일에 예로써 하나로 통일시키지 아니하면 끝내 문란하고 질서가 없어져, 오랑캐의 풍습으로 돌아갈 것을 면하지 못하리니, 이에 제사의 예법을 적고 그림을 만들어서 뒤에 붙였은 즉, 모름지기 자세히 살펴 이대로 따라 행할 것이요, 만일에 부형이 하고자 하지 않으면 의당 간곡히 설명을 드려서 바른 데로 돌아기기를 기약하여야 한다.

 

居家章 第八

 

凡居家 當謹守禮法 以率妻子及家衆 分之以職 授之以事 而責其成功 制財用之節 量入而爲出 稱家之有無 以給上下之衣食 及吉凶之費 皆有品節 而莫不均一 裁省(생)冗費 禁止奢華 常須稍存贏餘 以備不虞 稱(일컬을 칭,저울) 冗(쓸데없을 용)稍(벼줄기 끝 초, 작다, 적다)羸(야윌 리, 앓다)虞(헤아릴 우, 근심, 걱정)

무릇 집에 거하는 데는 마땅히 삼가 예법을 지켜 처자와 집의 사람들을 거느려서 직분을 각각 나누어 주고, 일을 맡겨 성공을 책임지워야 하며, 집의 재물의 씀씀이에도 절도가 있게 하여 용도를 해아려서 지출을 하고, 가산의 유무를 맞추어 웃사람, 아랫사람의 의식과 길흉의 행사비용에 충당하되, 모두 품절이 있고 균일하게 하여 긴요하지 않은 비용은 헤아려서 절약하고, 사치를 금지하여 항상 모름지기 여분을 두어 뜻하지 않게 일어나는 용처에 대비할 것이다.

冠婚之制 當依家禮 不可苟且從俗 苟(진실로 구, 임시, 구차이도)且(또차, 장차)

관혼의 제도는 의당 가례에 의거할 것이요, 구차스럽게 속례를 따라서는 안 될 것이다.

兄弟 同受父母遺體 與我如一身 視之 當無彼我之間 飮食衣服有無 皆當共之,設使兄飢而弟飽 弟寒而兄溫 則是一身之中 肢體或病或健也,身心 豈得偏安乎,今人 兄弟不相愛者 皆緣不愛父母故也,若有愛父母之心 則豈可不愛父母之子乎,兄弟若有不善之行 則當積誠忠諫 漸喩以理 期於感悟 不可遽可厲色佛言 以失其和也 漸(점점 점)喩(깨우칠 유)遽(갑자기 거, 분주히)厲(갈려, 화)

형제는 부모의 유체를 한가지로 받아 나와는 한몸과 같으니, 서로 보기를 마땅히 피아의 구별이 없이 음식이나 의복이 있고 없고 간에 같아야 할 것이다. 가령 형은 굶주리는데 아우는 배부르고, 아우가 추위에 떨고 있은데 형은 따뜻하게 입고 있다면, 이것은 한 몸 가운데 한 쪽은 병들고 한 쪽은 건강하다는 것과 같은 즉, 이러고 보면 몸과 마음이 어찌 한 쪽만 편안하겠는가. 오늘날 사람들이 형제간에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모두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데서 비롯한다. 만일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찌 같은 부모의 자식을 사랑하지 않겠는가. 형제가 만약 착하지 못한 행실이 있다면 마땅히 정성을 쌓아 충간하여 사리도 점차 알아듣고 깨닫도록 말할 것이요, 노한 기색과 거스리는 말로 화기를 잃어서는 안된다.

今之學者 外雖矜持 而內鮮篤實 夫婦之間 衽席之上 多縱情慾 失其威儀, 故 夫婦不相昵狎而能相敬者甚少 如是而欲修身正家 不亦難乎,必須夫和而制以義 妻順而承以正 夫婦之間 不失禮敬然後 家事 可治也,若從前相狎 而一朝 遽欲相敬 其勢難行 須是與妻相戒 必去前習 漸入於禮 可也,妻若見我發言持身 一出於正 則必漸相信而順從矣

鮮(고을 선, 적을 선)衽(옷김 임, 여미다)縱(늘어질 종, 풀다. 쫒다)昵(친할 닐, 아버지의 위패가 있는 곳)狎(익숙할 압, 가벼히 보다) 遽(갑자기 거, 분주히)

지금의 배우는 자들은 비록 밖으로는 긍지를 가지고 있으나, 안으로 독실함이 적어서 부부간에 이부자리 속에서 정욕을 방종하게 하여 그 위신과 예을 잃었으므로, 부부 사이에 서로 희롱하지 않고 서로 공경할 수 있는 자가 매우 적다. 이렇게 하고서 몸을 닦고 집안을 바루려 하니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모름지기 지아비는 화하여야 하되, 의로써 어거하며, 지어미는 순하되 바름으로써 지아비의 뜻을 이어받아 부부간에 예와 공경함을 잃지 않은 후에야 집안 일이 다스려질 수 있으니, 만일에 종전에 서로 희롱하다가 일조에 갑작스럽게 서로 공경하려 한다면 행하기가 어려울 것인즉, 모름지기 아내와 서로 삼가 근신하면 반드시 이전의 습관을 버리고 점차로 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아내가 만약 내가 하는 말과 몸가짐이 한결같이 바른 데 있는 것을 보면 반드시 점차로 서로 믿고 순종할 것이다.

生子 自稍有知識時 當導之以善 若幼而不敎 至於旣長 則習非放心 敎之甚難 敎之之序 當依小學,大抵一家之內 禮法興行 簡編筆墨之外 無他雜技 則子弟亦無外馳畔學之患矣,兄弟之子 猶我子也 其愛之 其敎之 當均一 不可有輕重厚薄也. 馳(달릴 치, 제멋대로 하다.)畔(두둑 반, 경계)

자식을 낳으면, 조금씩 알기 시작할 때부터 의당 선으로 인도할 것이며, 만일에 어려서 가르치지 아니하면 자라서는 그른데 습관이 들고 방심하여 가르치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가르치는 순서는 소학에 의허할 것이디ㅏ. 대저 한 집안에 예법이 흥행하고 책과 필묵 이외에 다른 잡기가 없으면 자제들도 역시 학문을 버리고 밖으로 내달릴 폐단이 없을 것이다. 형제의 자식도 나의 자식이니 이들을 사랑하고 가르치는 일도 마땅히 같아야 하며, 자기 자식과 구병해서 경중, 후박을 가려서는 안 된다.

婢僕 代我之勞 當先恩而後威 乃得其心 君之於民 主之於僕 其理一也, 君不恤民則民散 民散則國亡 主不恤僕則僕散 僕散則家敗 勢所必至,其於婢僕 必須軫念飢寒 資給衣食 使得其所 而有過惡 則先須勤勤敎誨 使之改革 敎之不改然後 乃施楚撻 使其心 知厥主之楚撻 出於敎誨 而非所以憎嫉 然後 可使改心革面矣 恤(구휼할 휼, 동정)軫(수레 진)厥(그궐, 파다, 다하다)憎嫉(미워할 증,시기할 질)

하인들은 나의 수고로움을 대신하니 의당 은혜를 먼저 하고 위엄을 뒤로 하여야 그 마음을 얻을 것이니, 임금이 백성에게, 주인이 하인에게 주는 것은 그 이치가 한 가지이다. 임금이 백성을 사랑하지 아니하면 백성이 흩어지고, 백성이 흩어지면 나라가 망하며, 주인이 하인을 사랑하지 아니하면 하인이 흩어지고, 하인이 흩어지면 집이 패망하는 이러한 형세는 반드시 이른다. 하인에게는 반드시 배고프고 추운 것을 염두에 두고 살펴서 옷과 먹을 것을 주어 제 생계를 이루도록 하고, 허물이 있는 자나 악한 자가 있으면 우선 모름지기 근근히 가르쳐서 고치도록 하되, 가르쳐도 개준의 빛이 없으면 매질을 하는데, 주인의 매질하는 마음은 가르치기 위함이요, 미워서 때리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한 뒤에 고치도록 할 것이다.

治家 當以禮法 辨別內外 雖婢僕 男女不可混處 男僕 非有所使令 則不可輒入內 女僕 皆當使有定夫 不可使淫亂 若淫亂不止者 則當黜使別居 毋令汚穢家風,婢僕 當令和睦 若有鬪鬩喧噪者 則當通加禁制 輒(문득 첩, 갑자기)黜(물리칠 출)穢(더러울 예)鬩(다툴혁)喧(의젓할 훤, 두려워하다)噪(떠들석할 조)

집안을 다스리는 데는 마땅히 예법으로 안팎을 분별하여 비록 하인들이라 할지라도 사내와 계집이 섞여 거처하지 못하도록 하며, 남자종은 시키는 일이 없으면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계집종은 모두 남편을 정하게 하여 음란한 행실을 하지 못하게 하되, 만일에 계속해서 음한한 행실을 하는 자는 마땅히 쫒아내어 따로 살게 하여, 가풍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하인들에게 마땅히 화목하도록 하되 만일 싸우거나 시끄럽게 구는 자가 있으면 통절히 금하고 억제하여야 할 것이다.

君子憂道 不當憂貧 但家貧 無以資生 則雖當思救窮之策 亦只可免飢寒而已 不可存居積豊足之念 且不可以世間鄙事 留滯于心胸之間, 古之隱者 有織屨而食者 樵漁而活者 植(치)杖而耘者 此等人 富貴不能動其心, 故 能安於此 若有較利害計豊約之念 則豈不爲心術之害哉,學者 要須以輕富貴守貧賤爲心

鄙(인색할 비, 천하게 여기다)屨(신 구, 신을 신다.)杖(지팡이 장)較(견줄교, 나타나다)

군자는 도를 걱정할 뿐이요, 집안이 가난한 것은 걱정하지 아니하나, 집안이 가난하여 살아갈 수 없으면 비록 의당 궁색함을 구할 계책은 생각하여야 하나, 역시 춥고 배고픈 것을 면할 정도 밖에 아니할 뿐이요, 재물을 모아 풍족할 생각은 해서는 안 되며, 또한 세간에 비천한 일을 마음속에 두어서는 안될 것이다. 옛날의 숨어서 사는 이들 중에 짚신을 삼아 먹고 사는 이도 있고, 나무를 하거나 고기를 잡아먹고 사는 이도 있었으며, 밭을 갈아 먹고 사는 이도 있었으니 이러한 사람들은 부귀영화에 마음이 동하지 않는 고로 이러한 생활로도 마음이 편한 것이었다. 만일 이해를 헤아려 풍족한 살림을 꾀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찌 심술의 해가 아니겠는가. 배우는 자는 모름지기 부귀를 가볍게 알고 가난하고 천한 것을 지켜 마음으로 삼을 것이다.

居家 貧窶 則必爲貧窶所困 失其所守者多矣,學者正當於此處用功 古人曰 窮視其所不爲 貧視其所不取 孔子曰 小人 窮斯濫矣 若動於貧窶 而不能行義 則焉用學問爲哉, 寠(가난할 구)

집에 거하면서, 가난에 시달려 그 지키는 바를 잃는 자가 많다. 배우는 자는 바르게 이것에 공부를 힘써야 한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궁색하면 그 하지 않는 것을 볼 것이요, 가난하면 취하지 않을 것을 볼 것이다.’하였고, 공자는 ‘소인이 궁색하면 넘친다’하였으니 가난에 시달리다 못해 마음이 동하여 의를 실행하지 못하게 되면 학문은 해서 무엇하겠는가.

凡辭受取與之際 必精思義與非義 義則取之 不義則不取 不可毫髮放過,

무릇 사양하며 받고, 취하며 주고 할 때에는 반드시 자세히 의와 의 아닌 것을 생각하여 의로운 것이면 취하고, 의롭지 못한 것이면 취하지 아니하여 털끝만치라도 허투루 넘겨서는 안 될 것이다.

若朋友 則有通財之義 所遺 皆當受 但我非乏而遺以米布 則不可受也 其他相識者 則只受其有名之饋 而無名則不可受也 所謂有名者 賻喪 贐行 助婚禮 周飢乏之類 是也,

遺(끼칠 유, 버리다)饋(먹일 궤, 드리다)贐(전별할 신, 떠나는 사람에게 주는 노자)

친구 사이에는 재물을 통하는 의리가 있은 즉, 주는 것은 의당 받아야 할 것이지만, 내가 부족하지 않은데 쌀이나 베를 준다면 받아서는 안 된다. 기타 아는 사이에도 명분이 있는 선사만 받을 것이요, 명분이 없는 것은 받지 말 것이니, 이른바 명분이 있다 함은, 상사에 부의나 여행하는 데 필요한 노자, 혼사에 부조하고 양식이 없을 때에 보태 주는 따위를 말한다.

若是大殷惡人心所鄙惡(오)者 則其饋雖有名 受之 心必不安 心不安 則不可抑而受之也, 孟子曰 無爲其所不爲 無欲其所不欲 此是行義之法也

만일에 악한 자로서 내가 마음속에 더럽고 밉게 여기던 사람이 보내는 것은, 비록 그 선사가 명분이 선것이라 하더라도 받으면 마음이 불안할 것이니, 마음에 불안하면 억지로 받지 말 것이다. 맹자는 말하기를 ‘양심에 하기 싫은 것은 하지 말라’ 하였으니 이것이 의를 행하는 법이다.

中朝則列邑之宰 有私俸,故 推其餘 可以周人之急矣 我國則守令 別無私俸 只以公穀 應日用之需 而若私與他人 則不論多少 皆有罪譴 甚則至於犯贓 受者 亦然 爲士而受守令之饋 則是乃犯禁也,

중국에는 각 읍의 수령이 사봉의 있으므로 그 여유를 미루어 남의 급한 사정을 보조할 수 있지만 우리 나라에는 수령에게 별도로 사봉이 없고 그저 공곡으로 일상의 수용에 공급하므로, 만일 사사로 남에게 주려면 다소를 막론하고 모두 죄가 되어, 심하면 범장으로 다스리며 받은 자 역시 그러하니, 선비로서 수령의 선물을 받으면 이것은 금제를 범하는 것이 된다.

古者 入國而問禁 則居其國者 豈可犯禁乎,守令之饋 大抵難受 若私與官庫之穀 則不論人之親疏 名之有無 物之多寡 皆不可受也(若分厚邑宰 以衙中私財周急 則或可受也)

옛날에는 국경에 들어서면서 그 나라의 금령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하니, 그 나라에 사는 사람이 어찌 그 나라의 금령을 범하겟는가. 수령이 주는 것은 대체로 받기 어려우니, 만일 과고의 곡식을 사사로 주면 수령과 친하건 소루하건, 명목이 있건 없건, 또 수량이 많건 적건간에 모두 받아서는 안된다. (만일에 교분이 두터운 수령이 자기의 사재로 준다면 혹 받을 수도 있다.)

 

接人章 第九

 

凡接人 當務和敬 年長以倍 則父事之 十年以長 則兄事之 五年以長 易稍加敬 最不可恃學自高 尙氣陵人也 恃(믿을 시)

무릇 사람을 접대하는 데는 마땅히 화하고 공경하기에 힘쓸 것이니, 나이가 나보다 배가 되면 아버지처럼 섬길 것이요, 10년이 위이면 형으로 모시고, 5년 위라도 조금은 존경을 더할 것이요, 학문을 믿고 스스로 높은 체하거나 기를 숭상하여 남을 능멸해서는 안 된다.

擇友 必取好學 好善 方嚴 直諒之人 與之同處 虛受規戒 以攻吾闕 若其怠惰 好嬉 柔侫不直者 則不可交也

諒(믿을 량, 참, 진실)闕(대궐 궐)嬉(즐길 희)侫(아첨할 령)

벗을 택하되 반드시 학문을 좋아하고 착한 것을 좋아하며, 바르고 엄숙하며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을 취하여, 이와 함께 거처하면서 규계를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여 나의 결함을 다스릴 것이요, 만일에 그가 게으로고 희롱을 좋아하며 부드럽고 아첨을 하여 곧지 못한 자라면 사귀어서 안 될 것이다.

鄕人之善者 則必須親近通情 而鄕人之不善者 亦不可惡言揚其陋行 但待之泛然 不相往來 若前日相知者 則相見 只敍寒喧 不交他語 則自當漸疎 亦不至於怨怒矣 寒喧(찰한, 의젓할 훤-안부나 묻는 것)

고향 사람으로 착한 자는 반드시 친근하여 정을 통할 것이요, 고향 사람으로 착하지 못한 자도 역시 악한 말로 그의 비루한 행위를 널리 퍼뜨리지 말 것이며, 그저 범연히 대접하되 서로 왕래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에 전날 서로 알던 사람이라면 만날 때 안부나 묻고 다른 말은 주고 받지 않는다면 자연 소원하게 되고 원망하거나 노하지 않을 것이다.

同聲相應 同氣相求 若我志於學問 則我必求學問之士 學問之士 亦必求我矣 彼名爲學問而門庭 多雜客 喧囂度日者 必其所樂 不在學問故也

喧(의젓할 훤)囂(들렐 효, 왁자한 소리)

소리가 같으면 서로 응하고, 기운이 같으면 서로 구하게 되니, 만일에 내가 학문에 뜻을 두면 내가 또한 학문을 하는 선비를 구할 것이요, 학문하는 선비도 또한 나를 구할 것이다. 명색이 학문을 한다 하고 문정에 잡객이 많이 시끄러이 나날을 보내는 자는, 반드시 그 즐거워하는 바가 학문에 있지 않는 까닭에 그러하다.

凡拜揖之禮 不可預定 大抵父之執友 則當拜 洞內年長十午歲以上者 當拜 爵階堂上而長於我十年以上者 當拜 鄕人年長二十歲以上者 當拜 而其間高下曲折 在隨時節中 亦不必拘於此例 但常以自卑尊人底意思 存 諸胸中 可也,詩曰 溫溫恭人 惟德之基

무릇 절하는 예는 꼭 정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대개 아버지의 친구에게는 절하고 동리에서 나보다 15세 이상 연장인 자에게도 절하고, 벼슬이 당상에 오르고 나보다 10년이 연상이면 절하며, 고향 사람이 20세 이상이면 절할 것이니, 그 사이에 높고 낮은 곡절은 때에 따라 들어 맞게 할 것이요, 때에 따라 반드시 이 예에 구애될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항상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뜻을 마슴속에 두어야 한다. 시경에 ‘따사롭고 공손한 사람은 덕의 기초이다.’라고 하였다.

人有毁謗我者 則必反而自省 若我實有可毁之行 則自責內訟 不憚改過 若我過甚微而增衍附益 則彼言雖過 而我實有受謗之苗脈 亦當剗鋤前愆 不留毫末 若我本無過而捏造虛言 則此不過妄人而已 與妄人 何足計較虛實哉,且彼之虛謗 如風之過耳 雲之過空 於我 何與哉,

남이 나를 훼방하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돌이켜 자신을 살펴서, 만일 내가 저말 훼방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한 적이 있었다면, 스스로 꾸짖어 허물을 고치기를 꺼리지 말 것이요, 만일 나의 과실이 심히 적은데 그가 보내어 말했다면, 그의 말은 비록 지나치기는 하지마는 내가 실로 훼방받을 근거가 있었으니, 역시 전날의 잘못을 통절히 파헤쳐 내어 털끝만치라도 남겨 두지 말 것이요, 만일 내게는 본래 허물이 없는데, 헛된 비방을 지어 내었다면 그는 망령된 사람일 뿐인 즉, 망령된 사람과 어찌 허실을 따질 것인가. 그러므로 헛된 비방은 바람이 귀를 스치듯이, 구름이 허공에 떠 있는 듯한 것인 즉, 나에게 무슨 상관이 되겠는가.

夫如是 則毁謗之來 有則改之 無則加勉 莫非有益於我也,若聞過自辨 曉曉然不置 必欲置身於無過之地 則其過愈甚而\取謗益重矣, 昔者 或問止謗之道 文中子曰 莫如自修,請益 曰 無辨 此言 可爲學者之法

대개 이렇게 되면 비방이 생길 때에 내게 허물이 있으면 고치고, 없었으면 더욱 허물을 안 짓도록 힘쓸 것이니, 나에게 유익하지 않는 것이 없다. 만일에 그런 비방을 듣고 시끄럽게 자신을 변명하여 기어이 자기가 허물이 없는 사람이 되려고만 한다면, 그 허물은 더욱 깊어져 비방을 받음이 더욱 무거워질 것이다. 옛날 어떤이가 비방을 그치게 하는 도를 물었더니, 문중자가 말하기를 ‘스스로 몸을 닦느니만 같지 못하다’ 하였다. 그 사람이 다시 한 마디를 청하니, 문중자는 ‘변명하지 말라’ 하였다. 이 말이 배우는 자의 법이 될 만하다.

凡侍先生長者 當質問義理難曉處 以明其學 侍鄕黨長老 當小心恭謹 不放言語 有問則敬對以實 與朋友處 當以道義講磨 只談文字義理而已 世俗鄙俚之說 及時政得失 守令賢否 他人過惡 一切不可掛口

무릇 선생이나 웃어른을 모실 때는 마땅히 의리의 알기 어려운 곳을 여쭈어서 그 배움을 밝힐 것이다. 향당의 장로르 모실 때는 마땅히 공손하고 조심하여 말을 함부로 하지 않다가 묻는 것이 있으면 공경히 사실대로 대답할 것이다. 친구와 같이 있을 때에는 마땅히 도의로써 학문의 기술을 강구하고 연마하여 오로지 문자와 의리만을 말할 뿐이요, 세속의 비천한 말이나 시정의 득실, 수령의 어질고 어질지 못한 점, 남의 허물이나 좋지 아니한 점은 일체 입에 담지 말 것이다.

與鄕人處 雖隨問應答 而終不可發鄙褻之言 雖莊栗自持 而切不可存矜高之色 惟當以善言誘掖 必欲引而向學 與幼者處 當諄諄言孝悌忠信 使發善心 若此不已 則鄕俗 漸可變也

鄙(더러울비, 어리석을)褻(더러울 설)誘掖(꾈유, 겨드랑이 액)諄(타이를 순)

고향사람과 놀적에는 비록 묻는데 따라 응답하더라도 끝내 비루하고 외설적인 말을 내지 말 것이요, 비록 점잖게 몸가짐을 가지더라도 스스로 높은 체하는 기색을 두지 말고, 오직 착한 말로 이끌어서 학문에 향하도록 애 주고, 나보다 나이 젊은 자에게는 순순히 효, 제, 충, 신을 말하며 착한 마음을 발하도록 해 줄 것이니, 이렇게 하여 마지 않는다면 향속을 점점 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常以溫恭慈愛 惠人濟物爲心 若其侵人害物之事 則一毫不可留於心曲, 凡人 欲利於己 必至侵害人物, 故 學者先絶利心然後 可以學仁矣

항상 온순하고 공손하며 자애로서 남을 이롭게 하고 물(物)을 해롭게 하는 일은 털끝만치라고 마음에 두지 말 것이다. 무릇 사람이 자기에게 이롭게 하려고만 한다면 반드시 남을 침해하게 되는 까닭에, 배우는 자는 먼저 자기에게 이로우려는 마음을 버리고 난 후에야, 인(仁)을 배울수 있을 것이다.

居鄕之士 非公事禮見及不得已之故 則不可出入官府 邑宰雖至親 亦不可數(삭)數往見 況非親舊乎,若非義干請 則當一切勿爲也 數셀수

시골에 사는 선비는 공사나 부득이한 일이 아니고서는 관가에 출입하지 말 것이요, 고을의 수령이 비록 지극히 친한 사이라 할지라도 자주 가 보아서는 안 도리 것인데, 하물며 친구가 아님에랴. 만일에 의롭지 못한 청탁을 일체 하여서는 아니 된다.

 

處世章 第十

 

古之學者 未嘗求仕 學成則爲上者 擧而用之 蓋仕者 爲人 非爲己也,

옛날 배우는 자는 벼슬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의 성취되면 위에서 천거하여 쓰는 것이니, 대개 벼슬은 남을 위한 것이요,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다.

今世則不然 以科擧取人 雖有通天之學 絶人之行 非科擧 無由進於行道之位,

지금은 그렇지 아니하여 과거로 인재를 뽑게 되므로, 비록 천리를 통하는 학문과 인간에 뛰어난 행실이 있어도 과거가 아니면 출세하여 도를 행할 수 없으므로

故 父敎其子 兄勉其弟 科擧之外 更無他術 士習之偸 職此之由, 等今爲士者 多爲父母之望 門戶之計 不免做科業 亦當利其器 俟其時 得失 付之天命 不可貪躁熱中 以喪其志也 偸(훔칠 투, 가볍다, 탐내다) 做(지을 주, 짓다, 만들다) 俟(기다릴 사, 천천히 걷는 모습)躁(성급할 조)

아비가 자식을 가르치고 형이 아우에게 권하는 것이 과거 외에는 다시 다른 방법이 없으니, 선비 풍습의 버려짐이 이 과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의 선비가 부모의 희망과 문호의 계책을 위하여 많이 과거를 하더라도, 마땅히 자기의 포부를 길러서 시기를 기다려 득실은 천명에 붙일 것이요, 탐독하고 열중하여 그 의지를 잃지 않아야 한다.

人言科業爲累 不能學問 此亦推託之言 非出於誠心也,

사람들이 말하기를 ‘과거 때문에 학문할 수 없다’하니 이것은 핑계하는 말이요, 성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古人養親 有躬耕者 有行傭者 有負米者 夫躬耕 行傭 負米之時 勤苦甚矣 何暇讀書乎,惟其爲親任勞 旣修子職 而餘力學文 亦可進德 今日之爲士者 不見爲親任勞 如古人者 只是科業一事 是親情之所欲 今旣不免做功 則科業 雖與理學不同 亦是坐而讀書作文,其便於躬耕 行傭 負米 不翅百倍,

옛 사람은 부모를 봉양할 때에 밭갈이도 하고, 품팔이도 하며 쌀을 지고 다니던 자도 있었으니, 이렇게 할 때에는 고생이 심한데 어느 겨를에 독서하랴마는, 그들은 부모를 위하여 노력하며 자식의 직분을 닦고, 남의 힘으로 글을 배워도 또한 덕에 나아갈 수 있었거늘, 오늘의 선비들은 옛 사람같이 부모를 위하여 노력도 하지아니하고, 다만 과거 공부 한가지가 부모의 욕망이므로 이것을 일삼게 되었으니, 과거 공부가 비록 학문을 연구하는 것과는 다르나 역시 앉아서 글 읽고 글ㄹ짓는 것이니, 밭갈고 품팔이하기보다는 백 배나 편하지 아니하랴.

況有餘力 可讀性理之書哉,只是做科業者 例爲得失所動 心常躁競 反不若勞力之不害心術,

하물며 부모를 섬기고 남은 힘으로 성리서를 읽을 수 있음에랴. 다만 과거 공부를 하는 자는 대개 득실에 움직이게 되어 마음이 항상 조금하므로, 노력하는 것이 도리어 심술에 무해한 것보다 못하다.

故 先賢曰 不患妨功 惟患奪志 若能爲其事而不喪其守 則科業理學 可以竝行不悖矣,

그러므로 옛 현인의 말씀에 ‘공부길에 바오해 될까 염려함이 아니라 뜻을 빼앗길까 걱정이다.’ 하였다. 만일 그일(과거공부)을 하면서도 그 뜻 지킴을 잃지만 않으면 과거 공부와 학문을 다스림이 병행하여 서로 어긋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今人 名爲做擧業而實不著功 名爲做理學而實不下手 若責以科業 則曰 我志於理學 不能屑屑於此 若責以理學 則曰 我爲科業所累 不能用功於實地 如是兩占便宜 悠悠度日 卒至於科業理學 兩無所成 老大之後 雖悔 何追,嗚呼 可不戒哉

요새 사람들은 과거 공부한다 하면서 공명도 못하고, 학문을 다시린다. 하면서 실지로는 착수도 아니하여, 만일 과거 공부를 책임지우면, ‘나는 과거공부 관계로 실제의 공부는 할 수 없다‘하여 이렇게 미루기만 하고 유유히 날짜만 보내어, 마지막에는 과거 공부, 학문 다스림 들 다 성취함이 없으니, 늙어서 뉘우친들 소용이 있으랴. 아아 경계할 지니라.

人於未仕時 惟仕是急 旣仕後 又恐失之 如是汨沒 喪其本心者 多矣,豈不可懼哉,

사람들이 벼슬하기 전에는 벼슬하기만 급하다가, 벼슬한 뒤에는 또 그 벼슬을 잃을까 걱정하여 골몰해서, 그 본심을 잃은 사람들이 많으니 어찌 두렵지 아니하랴.

位高者 主於行道 道不可行 則可以退矣 若家貧 未免祿仕 則須辭內就外 辭尊居卑 以免飢寒而已

벼슬이 높은 이는 도 행하기를 주장하여 도를 행할 수 없으면 물러날 것이요, 만약 집이 가난하여 먹기 위한 벼슬을 면하지 못하면, 모름지기 내직을 사양하고 외관을 구하며, 높은 지위를 사양하고 낮은 자리를 구하여 굶주림만 면할 것이다.

雖曰祿仕 亦當廉勤奉公 盡其職務 不可曠官而餔啜也

비록 먹기위한 벼슬을 하더라도 마땅히 청렴하고 부지런하게 공무를 받들어, 직무를 다할 것이요, 놀고서 먹기만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栗谷 李珥 略年譜

年 代

事 項

1536 (中宗31년)

1547 (明宗 2년) 13세

16세

1556 20세

22세

1559 23세

26세

1565 29세

 

30세

1567 (宣祖1년) 31세

33세

34세

 

36세

38세

 

39세

 

40세

41세

44세

45세

 

46세

 

47세

 

 

48세

49세

認祖2년 8월

12월 26일 새벽寅時에 江陵 萍村 烏竹軒에서 태어남

進士初試에 합격

母親 申師任堂 별세

自警文 지음

星州牧使 노경인의 딸과 결혼

慶北예안에서 李退溪와 論學

부친작고

7월에 生員進士試 급제

8월에 明經及第, 戶曹左郞에 임명

禮曹左郞에 임명

司諫院 正言에 임명. 같은해 겨울에 吏曹左郞에 임명

2월에 司憲府 持平에 임명.

「東湖問答」저술

6월에 弘文館 校理에 임명

6월 淸酒牧使에 임명

7월에 弘文館 直提學에 임명

通政大夫 承政院 副承旨에 임명

正月에 右副承旨에 임명

10월에 黃海道 觀察使에 임명

「聖學輯要」저술. 東西黨爭이 시작됨.

「擊夢要訣」저술. 「小學集註」탈고.

「道峰書院記」저술

「箕子實記」저술

12월 大司諫에 임명

6월에 嘉善大夫, 司憲府의 大司憲에 임명

10월에 資憲大夫, 吏曹判書에 임명

「人心都心說」, 「金時習傳」,「學校模範 및 司牧」 저술

8월에 刑曹判書에 임명

12월에 戶曹判書에 임명

9월에 判敦寧府事에 除授, 吏曹判書에 재임명

正月 16일 서울 대사동에서 別世

「文成」시호 추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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