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정할아버지/오우선생실기

인물편8- 김영한(金甯漢)

eungi5 2012. 9. 24. 14:07

 

김영한(金甯漢)-일중 김충현의 조부.

五友亭移建記 撰(1897년)

1878년(고종 15)∼1950년. 조선 말기 문신. 자는 기오(箕五)이고, 호는 급우재(及愚齋) 또는 동강(東江)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출신지는 충청남도 공주군(公州郡) 공암리(孔巖里)이다.

청음(淸陰)김상헌(金尙憲)의 5세손으로, 고조부는 공조참판(工曹參判)증 영의정(贈領議政)김간근(金澗根),

증조부는 순조의 3녀 복온공주(福溫公主)와 혼인하여 창녕위(昌寧尉)에 봉해졌으며

영의정(領議政)에 증직된 김병주(金炳疇), 조부는 돈녕부참봉(敦寧府參奉)증 참정(贈參政)김도균(金道均)이다.

아버지는 판돈녕원사(判敦寧院事)김석진(金錫鎭)이고, 생부는 면천군수(沔川郡守)김홍진(金鴻鎭)이다.

외조부는 해평(海平)윤치보(尹致輔)이고, 처부는 좌부승지(左副承旨)반남(潘南)박가양(朴嘉陽)이다.

빼어난 총명함을 타고 났으며 예닐곱 살 때부터 글을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17세에 1894년(고종 31) 갑오(甲午)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3등 409위로 합격하였다.

1898년(광무 2) 희릉참봉(禧陵參奉)에 제수(除授)되었으나 부친의 병으로 나가지 않고 영릉참봉(寧陵參奉)으로 옮겼다.

효종 승하 180년 작헌례 때 당하관 중 육품이상, 곧 참상(參上)으로 올라 승륙(陞六)으로 승전되어 영릉령(英陵令)에 제수(除授)되었다.

1900년(광무 4) 시강원시종관(侍講院侍從官)으로 삭녕군수(朔寧郡守)에 제수(除授)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1901년(광무 5)에는 용인군수(龍仁郡守)에, 이듬해에는 양근군수(陽根郡守)에 제수(除授)되었으며,

1903년(광무 7) 어진(御眞)을 모셔 서경(西京)에 봉안하였다.

그해 9월 비서원승(秘書院丞)에 제수(除授)되고, 헌종 계비 효정왕후남양홍씨(南陽洪氏)의 혼전(魂殿:왕족의 국상(國喪) 이후 종묘에 위패를 봉안하기 전까지 3년간 신주와 혼백(魂帛)을 모시는 방)인 효혜전(孝惠殿)의 향관(享官)에 차정되었다.

1905년(광무 9) 을사늑약 이후 세상에 대한 뜻을 접고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