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이야기/생활이야기(2006이후-)

김수환추기경의 선종

eungi5 2009. 2. 19. 23:34

2009.02.19

명동의 기적을 보면서

지난 2월 16일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 선종하셨다. 우리 나이로 향년 88세라고 한다. 일반인과 비교해보면 어느 정도 장수하신 연세다. 그런데 이 어른의 일생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올해 육십인 내가 기억하기에 이렇게 많은 추모 인파가 운집한 것은 박대통령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어째서 명동과 충무로를 가득히 메울 정도의 인파가 모인 것일까.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몇 시간을 기다려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고 이 많은 인파가 모였다. 카톨릭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이 행렬에 동참한 것을 보면서 우리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인지의 답을 보는 것 같다.

너나 할 것 없이 인간은 조금 더 잘 살아 보려고 하고, 조금 더 가지려고 하고, 조금 더 행복하려고 하고, 남에게 지는 것을 무엇 보다 싫어한다. 그것이 일반 인간이다. 한마디로 인간의 가장 인간다움은 욕망을 충족시키려 한다는데 있다. 富에 대한 욕망, 음식에 대한 욕망, 명예에 대한 욕망, 이성에 대한 욕망 등등. 그런데 이 욕망을 다 채운 인간은 지금까지 단 한사람도 없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나보다 조금 더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고, 나보다 조금 더 지위가 높은 이를 부러워하고, 나보다 더 힘이 센 자를 우리들은 부러워하고 때론 시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행복한 삶을 찾을 수 없다.

지금 우리 곁을 떠난 추기경은 재산이 남보다 많지 않았으며, 화목한 가정을 가지지도 않았으며, 매일 맛난 음식을 먹은 것도 아니며, 큰 권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그의 떠남을 우리들은 이렇게 아쉬워할까.

여의도에 진출하려는 수많은 사람들과 청와대를 목표로 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엄청 돈 많은 사람들과 소위 말하는 고관대작들 까지도 그 어떤 사람이 이런 아쉬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추기경이 떠남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남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그들과 함께 숨쉬고 아픔을 같이 한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이들이 항상 그와 함께 있었고, 그는 그들의 아픔을 진심으로 어루만졌기 때문에 지금 그의 떠남을 아쉬워하는 것이다.

권력을 가진 자를 두려워하지 않은 것이다. 총과 칼로 무장한 엄청 힘이 센 자들을 그는 순리로 가르쳤으며,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힘썼기 때문이다. 그래도 안 될 때 그는 몸을 던져 그들과 맞섰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떠남을 아쉬워하는 것이다.

가진 것을 모두 힘없고 어려운 이들에게 베푼 것이다. 많이 가진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은 될지는 몰라도 존경의 대상은 되지 않는다. 그는 가진 모든 것은 자기의 몸까지도 모두 어려운 이웃에게 베풀었기에 오늘 우리들은 그를 아쉬워하는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그는 가장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아무런 富도, 아무런 권력도 가지지 않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의 맘을 다 가지기 위해 그렇게 어렵게 생활한, 가장 욕심 많은 늙은이가 아니었을까.

말도 아닌 말이지만, 나도 저런 욕심 많은 늙은이가 되고 싶다.

구십도 못다 채운 인생을 살다 가신 님이시여.

당신은 너무나 큰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큰 자국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너무나 큰 교훈을 우리들에게 주시고 가셨습니다.

베풀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배려하라고 하셨습니다.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교훈이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의 뇌리에 남을진 몰라도 분면 우리 민족은 당신의 큰 가르침을 기억할 것입니다.

당신은 우리의 큰 울타리셨으며, 우리의 큰 안식처였습니다.

멀지 않은 때에 우리들도 당신의 뒤를 따를 것입니다. 그 때 ‘나도 조금은 이렇게 살았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오늘 명동의 기적을 보면서, 당신이 우리 곁에 계시면서 너무나 큰일을 하셨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주님과 함께 평화로운 곳에서 영면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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