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에서 알고 지내던 월정정주상선생의 문하인 현봉 조상기 선생께서 뇌천 김부식선생의 송도 감로사 차운 시를 보내 주셨다. 귀한 글 잘 간직해야겠다.
松都甘露寺次韻감로사차운(감로사의 운을 따라)
- 김부식 (金富軾)
俗客不到處(속객부도처)-속된 세상 사람은 오지 않는 곳에
登臨意思淸(등임의사청)-올라와 바라보면 마음이 맑아진다.
山形秋更好(산형추경호)-산의 모습은 가을에도 또한 좋고
江色夜猶明(강색야유명)-강물 빛깔은 밤이면 더욱 밝다.
白鳥高飛盡(백조고비진)-흰 물새는 높이 날아 사라지고
孤帆獨去輕(고범독거경)-외로운 배는 홀로 가기 가볍다.
自慙蝸角上(자참와각상)-부끄러워라, 달팽이 뿔 위에서 慙부끄러울참
半世覓功名(반세멱공명)-반평생 동안 공명 찾아 허덕였구나. 覓찾을멱,구하다.
절을 찾아서 자신이 살아온 반생을 돌아보며 더욱 높은 정신 세계를 지향하려는 뜻을 담았다.
첫 연에서 속된 사람과 정신이 맑은 경지를 대비해 보여주고,
둘째 연에서 정신이 맑은 경지에서 보는 산의 모습과 강물 빛깔이 봄보다는 가을이,
낮보다는 밤이 더욱 좋다고 하여, 세속적 입장보다 한 차원 높은 세계가 있음을 표현하였다.
셋째 연에서 맑고 높은 경지를 풍경에 투사했는데, 그것은 흰 물새처럼 높이 날고 외로운 배 같이
가벼운 경지라는 말이다.
끝 연은 또 지나온 자기 생애에 대한 한탄이다.
달팽이 뿔처럼 좁은 세상에서 권세를 차지하고자 분투해 온 자신의 일생을 반성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구축한 기반을 부정하고 은둔하지는 않았으므로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탄일 뿐이다.
복잡한 세속에서 바쁘게 살다가 절집을 찾아 산에 올랐다.
높이 올라 멀리 보니 마음이 아주 맑고 편안해진다.
가을 산은이미 낙엽이 다 떨어지고 없다.
잎이 다 지고 없는 텅빈 가을 산인데
내게는 그것이 봄산의 화려함보다 더 좋게 보인다.
멀리 강물이 보인다. 강물 빛은 밤이되자 오히려 달빛을 받아서 더 희게 느껴진다
강물은 한 밤중에도 달빛 아래서 저렇게 흘러가고 있구나
저 아래 물가에서 흰해오라기가 푸드득 날개를 치는가 싶더니
이 한밤에 높이 높이 솟아 올라 어디론가 날아간다.
강물 위엔 배 한 척이 바쁜 세상 일은 상관도 않겠다는 듯이 가볍게 강물 위를 떠내려 간다.
시인은 갑자기 말도 못하게 부끄러워졌다.
그동안 달팽이 뿔처럼 좁디 좁은 세상에서 부귀영화와 권세를 누리겠다고
아웅다웅 다투고 싸우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높이 올라 날아가 버린 것은 해오라기가 아니었다.
홀로 가볍게 떠내려 간 것은 돛단배가 아니었다.
정작날아가 버리고 사라져 버린 것은 내 안에 잔뜩 들어있던 욕심스런 마음이었다.
속세의 나그네로 들어온 가을 산 속에서 그는 비로소 새롭게 태어나 깨끗한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자연은 이렇듯 우리에게 떳떳한 삶의모습을 일깨워 준다.
일상에 찌들어 풀이 죽어 있을 때, 자연은 인간에게 싱싱한 생기를 불어 넣어 준다.
지리산 연못 속에 산다는 그 물고기처럼
우리도 마음 속에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무늬를 지니고 살았으면 참 좋겠다.
산을 닮고 나무를 닮고 강물을 닮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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