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정할아버지/오우선생실기

跋- 丙兌, 慶植, 昌基- 1980.11

eungi5 2012. 9. 12. 10:51

 

聖賢(성현)의 말씀에 ‘孝(효)는 百行(백행)의 源(원)’이라고 하셨다. 孝(효)에 바탕하지 않은 일이 어떻게 自身(자신)에게 도움이 되며 나아가 國家民族(국가민족)에 이로움이 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 인간은 한결같이 孝友(효우)를 崇尙(숭상)하면서 살아왔다. 또 그것을 昇華(승화)시켜 인류역사를 발전시키고 있다.

그러나 東西古今(동서고금)을 通觀(통관)해도 우리 五友(오우)할아버님처럼 至極(지극)한 孝友行績(효우행적)을 남기신 분은 보기 드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사백여년 전부터 士林(사림)은 廟宇(묘우)와 碑(비)를 세우고 春秋享禮(춘추향례)를 받들었으며 三江書院(삼강서원)에 配享(배향)하고 그 崇高(숭고)한 정신을 어이 받기에 정성을 쏟아왔다.

돌이켜 보면 백여년 전에 諱 致洪(휘 치홍)할아버지께서 五友先生實記(오우선생실기)를 刊行(간행)하여 後世(후세)에 남겨주셨지만 지금에 純漢文(순한문)인 原典(원전)은 거의 難解書(난해서)가 되었다. 그래서 다같이 國譯(국역)을 渴望(갈망)해 오던 중 재작년 宗員 丙祉(종원 병지)가 李翼成兄(이익성형)의 힘을 빌어 國譯(국역)을 完成(완성)하니 정말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널리 읽게 하여 倫理觀念 昻揚(윤리이념 앙양)에 큰 도움이 되기를 빌어 마지 않는다.

實記 刊行 後(실기 간행 후) 백여년이 經過(경과)하니 그 이후의 文案 友于亭先生墓碣銘(문안 우우정선생묘갈명), 五友亭移建記文(오우정이건기문), 復享告由文(복향고유문), 五友先生略傳碑文(오우선생약전비문)과 五友先生世系(오우선생세계)와 年譜(년보)를 追錄(추록)하였고, 卷之一 詩部 中(권지일 시부 중) 몇 수를 除外(제외)한 漢詩(한시)는 그대로 吟味(음미)함이 좋을 듯해서 飜譯(번역)하지 않았다.

이번 刊行(간행)에 즈음하여 積極 協助(적극 협조) 해주신 李翼成兄(이익성형), 河載裕兄(하재유형)과 여러 鄕友(향우)에게 眞心(진심) 으로 감사드리고, 刊行費用(간행비용)을 專擔(전담)한 丙奎(병규), 丙燮 從兄弟(병섭종형제)와 編輯(편집)을 맡아 手苦(수고)한 丙蘇(병소)의 勞苦(노고)를 致賀(치하)하며 刊行經緯(간행경위)를 記錄(기록)한다.

 

1980년 11월 일

 

                                                                                                           後孫 丙 兌

                                                                                                           後孫 慶 植

                                                                                                           後孫 昌 基 謹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