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정할아버지/오우선생실기

임호신에 대하여

eungi5 2012. 10. 26. 12:26

 

송신초등학교의 가을단풍

 

 

세 번째 이야기.

 

오우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선친을 통해 수도 없이 들어 왔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참으로 아쉬운 것은 다섯 할아버지의 기록이 삼매당할아버지의 시 한 편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후세의 사람들은 우리 다섯 할아버지의 선행에 대하여 의혹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어쩌면 그렇게 철저하게 기록이 없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나도 하고 있었으니 무리도 아닌 것이다.

 

효도와 우애가 사람이 살아가는 생애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가끔 메스컴을 통해 부모와 자식간의 애틋한 정, 고부간에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눈에 보이는 이야기가 아니고 숨겨져 실천되고 있는 아름다운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움직이는 우주만상의 현상을 볼 때 우리는 감탄을 금치 못하는 일이 참 많다.

 

우리 다섯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도 같은 의미로 우리는 이해해야 할 것이다.

오우선생실기를 보면 수백년 동안 경향 각지의 많은 인물들이 우리 할아버지의 선행을 칭송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의 면면을 보면 삼정승으로부터 전국의 유림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할아버지에 대한 칭송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으로도 우리 할아버지의 선행은 충분히 증명이 되고 있고, 특히 증명이 될 만한 글들이 없다고 해서 우리가 의심의 눈이나 마음으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그래도 5대조께서(致洪 할아버지) 오우선생실기를 만들어 두셔서 오늘의 우리가 다섯 할아버지에 대한 일들을 알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감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우리 할아버지가 가신지 어언 오백년을 헤아리지만, 그 기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말로 또는 글로 칭송하고 있다.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임호신

실기에 나오는 인물 중 유일하게 우리 다섯 할아버지의 선행을 확인하고 그 행실을 조정에 알려 벼슬을 제수하도록 한 인물이다.

그리고 사운시를 짓고, 오우라는 현판을 만들어 걸도록 하였다.

그는 경상도 관찰사로 종2품 벼슬을 지낸 분이다.

그가 오우정에 심방한 때는 1547년이다. 사전에 통고를 하고 방문을 하면 꾸밀 수 있기에 몸종과 마부도 거느리지 않은채 방문을 하게 되고 5형제의 우애를 직접 목격하게 된다.

 

당시에는 處士 또는 逸者, 遺逸, 逸民이라 하여,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자연속에서 즐기면서 사람의 도리를 지키고 학문에 심취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렇게 살아가는 이유가 당쟁이나 중상 모략으로 인하여 자신의 뜻을 바르게 펴면서 백성을 위해 일하고 명예롭게 생을 마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에서 너무나 많이 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잘 되는 사람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인간이 많아 많은 현인들이 고통을 받고, 귀양이나 심하면 죽임을 당하는 일이 많았다.

자신의 몸을 손상하는 것이 최고의 불효라고 생각하던 당시에 귀양을 가던지, 죽임을 당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불효를 저지르는 것이므로, 경주의 최부자집안의 경우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못하게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진외조부이자, 스승인 점필재선생의 부관참시나 동문수학한 한훤당 김굉필, 일두 정여창, 매계 조위, 탁영 김일손 등의 불행한 일을 가슴 아프게 목도하여 더욱 현실세계로 나가는 것을 포기하게 되고, 효도와 우애를 더욱 돈독히 하고 학문에 심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조정에서 벼슬을 제수하나 취임하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어쨌던 임 관찰사의 탐방으로 그 사실이 조야, 경향각지에 알려지게 되므로 첫 번째로 알아 두어야 할 사람으로 소개한다.

 

이 내용은 나의 블로그에도 같이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