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정할아버지/오우선생실기

오우선생실기의 탄생 1

eungi5 2013. 10. 13. 19:18

과거 1980년 화접초등학교에 근무할 즈음, 선친께서 서류 한 보따리를 들고 오셔서 교정을 보라고 하신다.

보니 십오대조 오우할아버지에 관한 실기다.

당시만 해도 한자에 대한 식견도 짧고, 할아버지에 대한 일도 잘 알지 못하던 시절,

겨우 한글 교정정도만 보고 일부 수정하여 다시 보내 드렸더니,

몇 개월 후 그것이 책으로 만들어져 지금의 ‘오우선생실기’라는 책이다.

어려서부터 다섯 할아버지의 우애와 효행에 관해서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들어 왔지만 늘 아쉬운 것은

그 어른들의 글이나 서찰이나 행적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이런 책이 만들어지니 고맙고 반가운 마음 헤아릴 길이 없다.

훌륭하신 우리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서 써보려고 한다.

이런 활동이 한문에 무지하고 별로 관심도 없는 우리의 아이들이 혹 보게 되면 나중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여 자료를 만들어 두려고 한다.

우리의 선조들께서 이런 좋은 자료를 만드셨는데, 모두 한자로 되어 있어

아버지께서 번역작업을 의뢰하시고 책으로 완성하셨고,

이 마저도 후손들이 접근하기에는 쉽지 않아 좀더 쉽게 풀어서 써서 앞으로 후손들이 접근하기에 편하게 하려함이다.

 

오늘은 오우선생실기가 책으로 꾸며지는 과정을 기록하고자 한다.

오우할아버지께서는 전술하였지만 안타깝게도 남아 있는 기록이 거의없다. 하물며 家乘에도 생졸연도도 기록이 없다. 그러니 다른 자료를 이용하여 추정할 수 밖에 없다.

다섯 형제분의 아름다운 행적이 온 고을에 알려져 관찰사가 그 행적이 사실인가를 확인하러 불시에 찾아 든 것이 1547년이니 할아버지 5형제분이 태어 나신 것은 아마 1500년대 초반일 것이다.

한국 유학의 거두이신 진외조부 점필재선생의 학통을 이어 받고, 당시의 한두매탁 선생 등과 교류하셨으니 엄청 많은 서찰이나 학문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들이 있었을 것이나 임란으로 인하여 모조리 소실되고 가옥과 묘우, 정자, 비석도 없어져 버렸다.

그러나 일부 기록물들이 남은 것을 자손들이 보관하여 오다 삼백여년이 지난 후 다시 자료를 모아 책으로 편찬한 것이 바로 오우선생실기이다.

 

오우선생실기의 序文을 쓴 종인 致久는 글의 서두에 할아버지의 행적에 대하여 소상이 기록하고 있다.

특히 실기를 편찬하게된 사유를 기록하고 있는데, 나의 5대조님 致洪-우우정9대손-과 밀양 종파의 泳純할아버지-우우정11대손-께서 천리를 멀다지 않고 찾아가 서문을 받았다.

아마 종파와 차종파를 대표하여 두 할아버지가 당시 광주부유수로 있고, 학문이 뛰어난 치구할아버지를 찾았던 것 같다.

수백년 동안 손으로만 전해져 오던 몇몇 자료들이 책으로 만들어져 햇볕을 보게 되는 순간인 것이다.

 

泳純할아버지의 부친은 守鏞으로 실기 속에 ‘유사 후 소지’를 쓴 분이기도 하다.

그 후 각종 자료를 목판으로 판각하여 책으로 출판하게 되었다. 그 해가 1874년이다.

지금도 그 목판본이 남아있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다.

선천께서는 순한문으로 된 이 목판본으로 번역작업을 하셔서 오우선생실기를 만드셨던 것이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그 많은 자료가 모두 없어졌지만

지금 전해지고 있는 몇몇 자료가 그래도 남아 있어서 우리들에게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 가장이 기본이 되는 인륜이 효도와 우애이다.

윤리와 도덕이 땅에 떨어져 뜻있는 이들이 통탄을 금치 못하는 이 시기에

우리들은 우리 할아버지의 크신 뜻을 이어 받아 올바른 사람으로서 윤리와 도덕을 실천하면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참다운 사람이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