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정할아버지/오우선생실기

민치구와 삼방파

eungi5 2014. 3. 22. 13:29

 

흥선대원군의 전국 서원철폐령에 의해 1868년 전국의 서원이 모두 철폐되는데 우리 삼강서원도 예외 일 수 없었다.

서원도 없어지고 오우정자, 사당, 비석도 모두 없어져 버렸으니 오우할아버지에 관한 모든 흔적이 사라질 위기에 쳐했을 때, 友于亭할아버지의 10대손 치홍과 12대손 영순 등이 그동안 수백년 동안 손으로만 전해져 오던 문서나 서찰을 책으로 엮기로 하고 그 서문을 致久에게 의뢰하게 된다. 그것이 1874년이다.

 

그러면 과연 致久는 누구인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장인이며, 고종의 외조부가 되는 분이다.

이 분은 10세 대제학 愉 할아버지(두문동 72현)에서 우리 집안과 갈라진 삼방파 후손이다.

 

대제학 할아버지는 다섯 형제를 두셨는데 우리는 둘째 이조판서 壽生 할아버지의 후손이고, 致久할아버지는 넷째 智生할아버지의 후손이다.

이 분이 우리 오우선생실기의 서문을 짖게 된다.

 

참고로 삼방파에 대하여 좀 더 알아보는 것이 우리 閔門의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상술하고자 한다.

 

致久할아버지에게는 십촌 중 驪城府院君 致祿이라는 분이 있다.

이 분이 바로 고종비 명성황후의 아버지다.

致久할아버지는 아들 삼형제를 두게 되는데, 아들 升鎬를 십촌인 致祿에게 양자로 보내게 된다.

이 삼형제분이 대한제국말엽 정치의 핵심의 역할을 하는 升鎬, 泰鎬, 謙鎬이다.

그리고 다시 致久할아버지의 십촌에 致三이라는 분이 계시다.

이 분의 아드님이 驪恩府院君 台鎬인데 이 분은 순종의 純明孝皇后1의 아버지이다.

 

이 세 할아버지(致久, 致祿, 致三)의 五代祖가 21세 驪陽府院君 維重이다.

이 어른은 숙종비 인현왕후의 친정 아버지이다.

그러니까 삼방파에서 왕후가 세분이 나셨다.

  1. 순명효황후:순명효황후 민씨(純明孝皇后 閔氏, 1872년 11월 20일(음력 10월 20일) ~ 1904년 11월 5일(음력 9월 28일))는 대한제국 순종 황제의 정후(正后)이다. 본관은 여흥. 아버지는 여은부원군(驪恩府院君) 민태호이다. 정식 시호는 경현성휘순명효황후(敬顯成徽純明孝皇后)이다.생애[편집]1872년 양덕방 계동에서 태어나, 1882년에 11살의 나이로 세자빈으로 책봉되었고, 1897년에는 황태자비로 책봉되었으나, 남편인 순종이 황제로 즉위하기 전인 1904년 11월 5일(음력 9월 28일)에 경운궁의 강태실에서 33살의 나이에 사망하였다.처음에는 경기도 양주 용마산 내동에 안장되었으며, 능호를 유강원(裕康園)이라 했으며 황태자비로 사망하였기에 시호를 순명비(純明妃)라 하였다. 1907년 순종의 즉위에 따라 황후로 추봉되어 순명황후로 올려졌고, 능호도 유릉(裕陵)으로 바꾸었다. 이후 순종이 붕어한 1926년에 남양주시 금곡동으로 이장되어 합장으로 모셔졌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