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이야기/생활이야기(2006이후-)

아, 참 다행이다.

eungi5 2009. 1. 8. 13:51

동물이던, 식물이던, 또는 미물이던 생명이란 항상 경외의 대상이다. 그 신비로움은 생명이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놀라움으로 가슴을 뛰게 만든다.

현미경으로 볼 수 밖에 없는 미생물도 그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보면 확인할 수 없는 창조의 힘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어제 퇴근하여 집에 들어오는데, 안식구가 하는 말

“보이소, 좋은 일 한 가지와 나쁜 일 한 가지가 있는데, 어떤 거부터 알고 싶은교?” 한다.

“글쎄, 좋은 일부터 알아볼까요?”

“우리 아롱이가 세끼 3마리 낳았답니다.”

“뭐, 어데....”

계단 밑에 개집으로 가서 보니 아롱이가 네 번째 새끼를 낳았다.

오산에서 다닐 때는 여섯 마리, 일곱 마리씩 낳아서 마음을 아프게 하고, 저도 힘들게 키웠는데, 3마리만 낳았다니 참 다행이고, 이번에는 별로 힘들지 않겠구나 하는 맘으로 안심이 된다. 사실 새끼가진 배가 일곱 마리 낳았을 때만큼 불러서 은근히 걱정을 했었다. 어쨌던 참 잘된 일이다.

“그런데, 안 좋은 일은 뭐요?”

“우리 닭이 사단이 났습니다.”

“뭣이!”

동네 돌아다니는 개가 닭을 물어 죽였단다. 얼마 전부터 동네에 왠 못보던 진도 잡종같이 생긴 놈이 어슬렁거리고 다니는 거 봤는데, 그 놈이 결국 일을 저질렀단다.

지난 9월 이 곳으로 올라와서 빈 닭장에 토종닭 암컷 4마리와 수컷 1마리를 사 넣었는데, 달포 전부터 유정란을 낳는데 요놈들 자라는 것만도 이쁜데, 유정란까지 제공하니 사료값이 올라도 재미로 키웠다. 그런데 이 몬땐 놈이 닭을 물어 죽였다니 순간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암탉 한 마리는 닭장 속으로 도망가서 숨어 있고, 나머지 암탉은 산으로 도망쳐서 아무리 불러도 내려 올 생각을 하지 않고, 수탉은 닭장 앞에 털을 잔뜩 뽑힌 채로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몽둥이를 들고 이 놈 누렁이를 찾아 나섰다. 나선들 그 놈이 나한테 잡힐 놈인가. 씩씩 열만 내다가 집으로 돌아 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평화롭게 잘 지내던 녀석이 잡아 먹혔을 생각하면 머리털이 쭈뼛서고 참을 수가 없다. 불쌍한 마음에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집에 주인이 있으면서도 지켜주지 못한 것이 한없이 미안하기만 하고.

오늘 아침에 무거운 맘으로 출근해서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니 안식구가

“보이소, 장닭이 개집 뒤에서 찾았는데, 살란가 모르겠습니다.”

한다.

그래도 아직 살아 있다는 말에 반가워 가서 보니, 아이고, 그 멋있던 장닭 꼴이 이기 모꼬.

잡종 개한테 쫒겨 가면서 꼬랑지 털은 몽땅 빠지고, 놀란 나머지 하루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죽은 듯이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

얼른 안고 나와 거실로 데리고 가서 살펴 보니 터리기 빠진 거는 둘째 문제고 등에 굵은 잇빨 자국이 선명하고 아직도 조금씩 피가 보인다.

하루 종일 숨어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거 같아 물을 주니 놀란 나머지 한 동안 가만히 앉아 있다가 조금씩 조금씩 물을 먹는다. 그러더니 한 컵을 금방 먹어 치운다. 기운을 조금 차리는 거 같아 개 사료(이 놈은 유난히 개 사료를 좋아한다.)와 쌀을 섞어 주니 조금씩 먹는다.

아! 살지도 모르겠다.

상처를 치료하려니 과산화수소가 보이지 않는다. 얼른 아랫마을 약국에서 사와 소독을 하고 사람 바르는 피부 연고제를 발랐다.

치료를 하면서 참으로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이게 생명이다.

애쳐로와서 닭장에 넣지 않고 박스에 담아 현관에 두었다.

아, 참 다행이다.

얼마나 놀랬니.

잘 지켜줄게, 이제부터는...............

암탉을 호위하면서 마당을 여유롭게 거닐던 이 녀석.

새벽 4시쯤이면 어김없이 사람을 깨우던 이 녀석.

상처는 며칠 치료하면 나을 것이고, 한 두어달 지나면 털도 다시 날 것이다. 그 날을 기다리면서 열심히 보살펴 줄게.

아, 참 다행이다.

이렇게 살아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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