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訓
窮極 目標
與 天 同 樂
實踐 要綱
1. 맑고 넓은 마음으로 億萬蒼生 도와주고
2. 나를 알고 勤勉하여 몸과 집을 保全하라
雲基, 垠基, 從基, 淨基, 敬基, 棟基에게
家訓을 制定하여 遵守케 한다.
吾門은 得姓 이래 천년이란 悠久하고도 燦然히 빛나는 역사를 간직하고 스물 아홉 위 先代 할아버님께서 한결 같이 훌륭하셔서 天理에 順應하신 必然的인 결과로써 綿綿히 대를 잇고, 또 도의를 傳承하셔서 현대에 이르러서도 他門에 遜色이 없는 家戶를 維持하게 하신 역대 할아버님의 至大하신 陰德에 대하여 무한한 감사를 드리는 바이며, 아울러 우리 가족들에게 생을 授與하셔서 至極히 아름다운 이 대자연 속에서 생을 즐길 수 있게 하시고, 온 가족이 건강한 몸으로 정을 나누며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시고 모든 肉體的, 心靈的인 喜悅을 느끼게 하여 주셨으니 이 河海도 부족할 그 無限한 恩功을 어찌 瞬息間인들 잊을 수 있으리오.
그러나 그 고마우신 할아버님은 단 한분도 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시니 무슨 도리로 報恩할 수 있을까?
아!
生者必滅의 原理에 의하여 그 육체가 돌아가심은 지극히 當然한 일이다. 그 高邁하신 이념만은 지금도 우리들의 가슴마다에 분초도 쉼이 없이 躍動하고 있으니 할아버님께서 어찌 돌아 가셨다고 할 수 있으리오.
내 몸의 속속에 浸透하고 이 생명을 보존하고 있은 붉고 붉은 소중한 피는 바로 할아버님의 피가 그대로 내 몸으로 넘어 와서 살아 계신 것이 아닌가.
그렇다.
나의 역대 할아버님은 돌아가시지 않으시고 내 몸 속에서 생활하고 계시다.
그러니 이 몸이 내 몸이라 해서 어찌 내 마음대로 아무런 規制없이 선악의 분별없이 理, 不理의 구분도 없이 함부로 행동할 수 있을까?
내 몸을 소중히 간직하고 역대 할아버님의 이념을 俱顯하여 이 세상을 敎化시키고, 미화시키는 것이 즉, 조상님에 대한 報恩하는 길이요, 우리가 生存하는 價値이며, 우리의 행복의 열쇠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현재의 社會相과 우리의 몸가짐을 돌이켜 反省해 볼 때, 너무나 寒心스럽기 짝이 없다.
天倫은 完全히 땅에 떨어져서 아비가 자식을, 자식이 아비를 죽이고, 형이 동생을, 동생이 형을 害하는 일을 例事로 생각할 정도가 되었고, 天理를 무시한 奸邪한 무리들은 高官 大爵에 登用되고, 天理를 알고 두려워하는 자는 바보가 되어 草野에 묻히게 되고, 人倫을 무시한 사기꾼은 천하 巨富가 되고, 見得思義하는 어진 자는 직장마져 잃게되어 굶주리다 못해 傳家族 集團自殺이란 慘劇이 얼마나 일어나고 있는가.
이러한 모습은 진실로 天理와 人倫을 無視한 阿鼻叫喚의 생지옥 그대로의 모습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이 지옥을 향해서 뭇사람들과 어울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行進하고 있는 것이다.
조상님께 대하여 悚懼스럽기 한이 없는 일이다. 가련한 인생들. 天理와 人倫은 잊은지 오래이면서도 살고져 하는 本能만은 잊을 수 없는지 이 지옥 속에서도 富貴榮華를 누려가며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그 모습 눈물이 나도록 애처롭고 불쌍하기 짝이 없다.
물론 인생을 살아야 한다. 더욱이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天地萬物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하고도 또 귀한 내 생명이기에 천하의 어떤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즉 조상에 대한 효도의 길이며, 또 創世主가 意圖한 바이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 幸福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를 너무도 모르고 있고, 또는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몰라서 많은 사람들이 불행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다시 한번 强調하노니 우리는 幸福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면 도대체 행복이란 어떤 것이며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을까.
행복이란 것이 어떤 물체가 아님으로 이것이라고 쥐어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사람마다 幸福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幸福이란 것을 이렇게 規定지우고 싶다.
행복이란 天理에 順應함으로써 얻어지는 精神的, 物質的인 만족한 生活相態라고 하고 싶다. 이것은 옛날 聖賢들이 한 말이라 해서 그대로 引用한 것이 아니고 내 자신이 어느 정도 느끼고 또는 確信했기 때문에 한 말이다.
즉 天理에 順應하면 봄 동산에 풀 자라는 것과 같이 그 자라는 것이 보이지는 않더라고 매일 매일 쉬지 않고 자라서 때가 오면 열매를 맺는 것과 같아서 절대 破壞되는 법이 없이 結局 完全한 것이 되지만, 천리를 어기면 今時는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어느 시기에는 반드시 破壞되고야 마는 법이기에 天理에 順應하지 않고서는 幸福할 수 없다는 것이다.
天理를 어기면 破壞된다는 데 대하여 이의가 있을 것이다.
요즘 세상에는 악한 자가 잘되고, 선한 자는 못 살더라, 天理니 뭐니 찾다가는 바보 취급만 당하고 필경 굶어 죽게 마련이라고 하겠지.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는 確固한 證據를 가지고 있다.
첫째, 조금 멀게 본다면 천리를 어기고도 잘된 사람을 나는 내 눈으로 본 바도 없고, 또 남에게서 듣지도 못했다. 그 예로써 獨裁者, 惡政者들의 末路를 보라. 그 破滅하는 상이 얼마나 悲慘하던가.
僥倖히 한 두 사람의 例外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후세 史家들은 붓으로 處刑시키고야 말 것이다.
둘째, 天理를 어기고 惡質的인 行爲로써 부자가 되어 驕慢하게 사는 것을 보고 못난 사람들은 그것을 부러워하고 악한 사람이 잘 되더라고 하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그 재물이 얼마 동안이나 그 사람의 수중에 머물 것인가.
나는 많이 본 바 있다.
원래 財物이란 뜬구름과 같이 잠시 왔다가 걷잡을 수 없이 지나가고 마는 법이다. 부자로 살던 사람이 돈 떨어지면 그 때는 傳染病患者보다 더 忌하고 더 더러운 것이다. 더욱이 惡質的으로 모은 사람이라면 만인이 그 사람 망한데 대해서 拍手 喝采를 보낼 뿐 누구하나 그 사람을 도와줄까.
그뿐인가.
그 자손들은 반드시 과거의 金力을 믿고 懶怠하고 驕慢하고 浪費하던 習性을 버리지 못하고 人亡家敗가 되고 마는 것이다. 말이 난 김에 여기서 너희들에게 當付하노니 너의들은 아무리 順理로 모은 재물이라 하더라도 한 세대당 최고 순금 10kg 환산액 이상 가져서는 않된다.
재물이란 것이 더러운 것이어서 많으면 많을수록 그 소유자가 더러워지고, 그 자손이 반드시 懶怠, 驕慢, 虛榮에 빠져서 家門을 더럽히고 마는 법이니 이 말을 銘心해야한다. 아무리 천리를 어기지 않고 순리대로 모은 재물이라고 그 이상은 조금도 미련없이 社會事業에 喜捨하도록 해라. 그 喜捨한 돈은 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이상의 재물이 될 것이다.
그 셋째로 아무리 惡子라 하더라도 理性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惡行을 했을 때, 그 사람은 理性의 꾸지람을 받게되고 심중에 煩悶이 항상 떠나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병이 되고 결국 자체 分裂로써 滅亡하고 마는 법이다.
그러니 小惡은 自滅하고 大惡은 天이 誅之하는 것이다.
다음은 선한 자가 못된다는 데 대해서 말하자면 일반 사람이 생각하는 善과 惡에 대한 定意부터 따져야 할 줄 안다. 보통 생각하기로 남에게 해로운 짓만 하지 않는 것이 선의 全部라고 생각한다. 이 얼마나 그릇된 解釋인가.
물론 善의 결과는 모든 사람에게 해롭지 않는 형태로써 나타난다. 그러나 모든 행동을 포기하고 조용히 앉아있어도 남에게 해롭지는 않다. 그렇다면 행동의 抛棄도 선이 될 수 있겠는가. 行動의 抛棄는 無能이요, 懶怠요, 愚요, 暗인 고로 이것은 嚴然한 惡의 一部分인 것이다.
그러므로 善이란 것은 積極的인 行動으로써 天理에 맞도록 至誠껏 노력하는 것이라고 規定짓고 싶다.
善者가 못된다는 말은 그대로 그 사람이 善者가 아니라는 말과 같다. 진정 善者였다면 평생 어려운 일이 없는 법이다. 우리 주변만을 보더라도 ‘그런 착한 사람이 그 고생을 하다니....’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을 많이 본다. 그러나 그 착하다는 사람의 지난 經歷을 살펴보면 반드시 착하지 못한 점을 발견할 것이다. 다만 마음만 착했을 따름이지 惡인 無能했거나, 懶怠했거나, 浪費했거나, 中庸을 잃었거나 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보통 善者라고 하는 사람 중에도 實際로는 天理를 그대로 順行하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들 6남매가 하루 빨리 옳은 인간으로서의 길은 찾아서 歷代 할아버님의 罔極한 恩惠에 報答하고 너희들 자신이 행복해지고 나아가서 사회의 옳은 일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懇切하여 우리 조상님들의 理念을 요약 成句하여 家訓이란 이름으로 너희들에게 주는 바이니 너희들 자신은 물론 앞으로 子孫에게 까지도 전하여 家道를 바로 잡도록 하라.
그러면 가훈에 대해서 해석을 하겠다.
窮極目標에 있어서 ‘與天同樂’이라 했는데, 이것은 글자 그대로 하늘과 더불어 함께 즐긴다는 말이다. 여기서 天이라 함은 이 無限 無量한 宇宙를 創造하시고 至巧, 至明하게 支配하시는 그 絶對的인 主宰者를 말함이다.
그러면 이 宇宙의 主宰者가 누구이며, 어디 있기에 그이와 함께 즐기라는 말인가. 虛妄하기 짝이 없는 소리라고 하겠지. 그러나 그 主宰者는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눈으로 볼 수도 없지만 사실은 내 몸 안에도 있고, 이 방 안에도 있고, 이 우주 속속마다 없는 곳이 없으니, 우리의 至誠으로서 느낄 수는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主宰者와 肉體的으로 사귈 수는 없지만 主宰者의 意圖하는 바와 정한 바 規律을 理解하고 順行함으로써 나 자신이 幸福해 질 수는 있을 것이니 즉 같이 즐거워하는 것이 되고, 主宰者는 衆生이 모두 幸福하게 사는 것을 보고 끝없는 微笑를 지으며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그 다음에 왜 하필이면 그 까다로운 天과 同樂을 하라는 것일까.
이 세상 만물은 天의 主管하에 있는 것이며 더욱이 우리 인생은 天의 특별한 配念下에 創造된 被造物이란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근래 신식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누가 나를 낳아 달라고 해서 부모가 나를 낳았는가, 공연히 자기네끼리 마음대로 낳아 놓고 자기들이 큰 공이나 있는 것 같이 孝道를 해라, 뭐해라 한다. 자기네 마음대로 낳았으니 자식을 공부시켜서 잘 살 수 있도록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 부모의 의무다.’ 라고 하는 소리를 내 귀로도 들은 일이 있다.
이 얼마나 하늘 무서울 소리냐 말이다.
나 自身을 그렇게 虛無하게 생각하는 그런 사람을 나는 한없이 불쌍히 생각한다. 이 몸이 그렇게 값없이 장난삼아 나서 꿈결같이 죽어가는 것이 아니다. 이 몸은 父母의 마음대로 出生할 수도 없고, 嚴然히 委囑을 받고 天으로부터 靈을 빌려서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 나를 기르신 것이다.
부모의 마음대로 자식을 둘 수 있다면 왜 3대나 5대나 獨子로 내려오다 山祭佛供을 하고 百日 祈禱를 해도 자식 하나를 못 두고 자손이 끊어지는 일이 있겠는가. 또 부모의 욕심으로 그 자식을 훌륭하게 키우려고 한없이 노력해도 마음애로 안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것이 즉 天, 父, 母의 3자 結合이 되어야 자식이 된다는 證據이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부모는 늙으면 죽는 법. 부모가 없으면 나와 제일 가까운 분이 나의 靈의 아버니인 天이 있을 뿐이니, 그 天과 同樂하는 것이 當然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天과 同樂하려면 天의 意圖하는 바, 즉 天의 規律, 다시 말해서 天理를 알아야 나도 거기에 順應하고 同樂할 수 있을 것이다.
天理를 논하려면 無識하고 容悅한 나로써 어떻게 理解할 수 있으며 더욱이 논할 수 있겠는가. 이 天理의 理解는 평생이 걸려도 좋으니 眞心으로 探究해서 알아야 할 宿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지금까지의 所見으로서 천리의 대원칙 몇가지 만이라도 너희들에게 말해 주고자 한다.
천리란 즉, 자연의 법칙이고 그 법칙 중의 大原則으로써 仁慈性, 陰陽性, 因果性, 循環性, 勤勉性, 守分性을 들 수 있다.
仁慈性은 宇宙 萬物에 각각 생명을 授與하고 그 생명을 維持하는데 필요한 빛을 주고, 공기를 주고, 먹을 것을 주고 하시니 그 얼마나 仁慈하신가.
陰陽性에 있어서도 陽이 있으면 반드시 陰이 있고, 큰 것이 있으면 낮은 것이 있고, 반드시 相對가 있어야만 萬物이 形成이 되고 또는 發展이 되고, 繁殖이 되는 原理이기도 하다.
因果性은 原因이 있으면 반드시 結果가 있고, 結果를 보면 그 以前에 반드시 그렇게 되게 한 動機가 있었다는 것, 즉 偶然이니 僥倖이니 하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고, 必然的으로 그렇게 되게 한 動機가 있다는 原理이고,
循環性은 같은 한 모양이 언제까지나 그대로 있는 것이 없고, 날이 저물면 밤이 되고, 밤이 밝으면 낮이 되고, 봄이 되고, 여름이 되고,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고, 이 세상 萬物이 다 돌고 돈다는 理致이며,
勤勉性은 이 宇宙가 단 一分 一秒라도 運行을 쉼이 있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는가. 이 우주를 支配하기 위하여 瞬息間도 쉬지 않으며,
守分性은 이 우주의 森羅萬象이 각각 자기 本分을 지키고 남의 權利를 侵害하지 않는 것, 태양은 태양으로써 항상 嚴然히 자기 位置를 固守하여 太陽系의 中心이 되고, 지구는 지구대로 그 軌道를 벗어나지 않고 모두 각자의 本分을 充實히 지키고 있는 原理이니
大略 以上과 같으나, 내가 아무리 생각하고 일년이 걸려서 表現하더라도 大自然의 그 精密한 理致를 어떻게 表現할 수 있겠는가.
이 정도로 大原則 몇 가지만 적으니 너희들은 이 大原則만이라도 順應해서 한없이 仁慈한 天理에 따르고, 혼자서는 되는 일이 없으니 좋은 벗을 사귀도록 힘쓰고, 長短의 調和를 이루고 좋은 결과를 얻고 싶거던 좋은 因緣을 맺고, 좋은 原因을 마련하고, 萬事가 때가 있는 법이니 너무 躁急하게 생각 하지말고 至誠껏 노력하고 自己本分을 지켜서 充實히 행동하고 虛慾을 내지 않으면 자연히 모든 것이 뜻대로 되고 정말 與天同樂의 境地에 들게 될 것이다.
다음 實踐 要綱의
‘맑고 넓은 마음으로 億萬蒼生 도와주고’는 맑은 마음이란 하늘을 우르러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도 남에게 苛責됨이 없고 헛된 慾心이 없고, 衣食에 큰 걱정이 없는 心理狀態일 것이다. 그렇게 하자면 지나친 慾心을 버리고, 正直하고 남을 속이지 않고 본분에 充實하면 자연 마음이 맑아질 것이고,
‘넓은 마음’은 仁慈한 마음으로 남을 容恕하고 어떠한 일이 닥쳐도 打開策을 講究할 지언정 걱정을 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남을 미워하지 않고, 吝嗇하지 않고, 즉 喜悲哀樂을 超越한 마음이니, 맑은 마음이란 행동을 잘하면 얻어질 수 있지만, 넓은 마음은 修養으로써만 얻을 수 있으니 매일매일 反省하고 다짐해야 될 것이다.
‘億萬 蒼生을 도우라’는 것은 글자 그대로 所重한 내 몸이니 좀 더 價値있게 뜻을 세워 全世界가 내 몸의 薰氣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萬百姓을 사랑하고, 사람 뿐 아니라 모든 生物을 함부로 殺生하지 말라는 것, 그럼으로 하물며 내 兄弟, 내 親戚을 사랑하고 돕는 거야 말해서 뭣하랴.
‘나를 알고 勤勉하여 몸과 집을 保全하라.’
나를 안다는 것은 자신의 身分, 職分, 能力, 義務 등 모든 자신이 해야 할 本分과 自身의 力量, 環境, 位置 등을 알아서 지나친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勤勉하라’는 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世上 萬事가 努力없이 되는 것이 없으니, 至誠으로 努力해야 하는 法이다. 내일은 언제나 있는 것이라 뒤로 미루지 말고, 생각났을 때, 눈에 보였을 때 卽時로 해야 하며, 일에 쫓겨서는 안되니, 찾아서 해야 한다.
‘몸과 집을 保全한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너희들 몸이 얼마나 所重한 몸이냐. 天地萬物과도 바꿀 수 없는 所重한 몸이니 남에게 辱을 당하지 않는다는 消極的인 것이 아니라 積極的으로 모든 사람의 거울이 될 만큼 훌륭한 몸가짐을 해서 千年의 빛나는 역사를 가지고 이어온 우리 집을 더욱 빛나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상 대략 줄거리만을 적었으나 제법 말이 많아서 다 어떻게 記憶하겠나 하고 생각할지 모르나, 다 記憶할 필요도 없고 실천요강
맑고 넓은 마음으로 億萬蒼生 도와주고
나를 알고 勤勉하여 몸과 집을 保全하라
이 말을 매일매일 마음 속으로 수없이 외우고 그것을 實踐하려고 努力만 하면 모든 것이 그 중에 다 들어 있으며, 너희들이 幸福하게 되는 것도 다 그 중에 있으니 平生토록 銘心하고 子孫에게까지 전하여라
丙午年(1966) 元旦
아비씀
운기, 은기, 종기, 정기, 경기, 동기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