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을 그리워하며 |
아버님 脫喪 날을 즈음하여 不孝子 垠基 삼가 告합니다.
世上天地 萬物 중에 제힘으로 난 것 없고
아버님 전 뼈를 빌고 어머님 전 살을 빌어
이내 一身 誕生하니 그 恩惠가 河海이고
平生 두고 갚자하나 그 方法을 알 수 없는데.
지난 이월 십팔일 날
꿈자리가 駭怪하고 온몸이 떨리더니
哀痛하고 罔極하게 아버님께서 가셨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들 이보다 더 하리까
나이 50 넘었지만 世上物情 어두운데,
하는 일이 未熟하여 항상 아버님의
꾸중 많이 들었는데,
애닮고도 설운지고
천년 만년 살으셔서 자식 訓導
하실 줄 알았더니
이 무슨 鬼神의 장난이며
하나님의 시기일까
둘도 없는 우리 아버지 一生을 돌아보면
甲子年 이월구일 아버님 誕生하나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父親喪을 당하시니
어이 할꼬 切痛하다
父子相逢 못하시니 그 限이 하늘같다.
祖父님의 무릎에서 千字文 닦으시고
겸상으로 食事하고 어른 사랑 독차지하니
天下에 귀한 孫子 이 이상 또 있을까?
東山里 大小家의 당시 形便 돌아보면
굴뚝위에 연기 없는 집들이 太半이라.
집집이 비슷하게 朝飯 夕粥 어려우나
五友先生 遺志이어 孝道와 友愛 家統
綿綿히 이어지니
우리 집안 後孫들아
본받아 實踐할 일 이것 말고 또 무엇이랴
夜學을 卒業하고 東山夜學 就職하여
月給으로 쌀 한말을 받으니
密陽의 손부자가 부럽잖다 하셨으며
守山丸星에 就職하여 어려운 집안경제
온힘으로 도우시다
열 아홉 어린 나이 徵兵으로 끌려가니
金枝玉葉 귀한 子息 死地로 내보내니
온 집안이 哭聲이요 어머니의 슬픔이 하늘을 찌르도다.
살아올 期約없는 세상에 다시없는
귀한 孫子, 귀한 子息
보내는 그 마음을 이 세상 무엇에다
비유할 수 있으리요.
더구나 祖父께서 다음해 別世하니
이쁜 손자 보고픈 마음 어떻게 눈감았을까
해방을 맞이한 해 아버님 年歲 스물세살
북경, 천진, 청도에서 그 고생을 하시다가
九死一生 還鄕하니
죽은 자식 돌아온 듯 慈堂을 비롯한
고향의 가족들의 반가운 그 심정을 무엇에다 비유하리
다음해 結婚하여 長子 雲基 出生하고
수산영단 移徙하여 祖母, 慈堂 모시면서
多福한 家庭生活 누리시며 사는 중에
祖母께서 別世하여 九日葬을 지내시며
痛哭하는 그 孝誠은 지금도 龜鑑이라
三門洞에 移徙하고, 密陽 水利組合 就職하나
哀痛하고 怨望스런
6, 25가 勃發하고
左右翼 患亂 속에 온 집안이 풍지 박산
전 財産을 處分하여 하늘같은 형님 구하시니
兄友弟恭 實踐하여 子孫의 龜鑑이라.
서른여섯 중년나이 母夫人 喪 당하니
切痛하고 痛忿하다.
젊은 나이 혼자되어 아들딸 잘 기르시고
이제는 편안하게 생활하실 즈음하여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니
嗚呼 痛哉라
孝誠깊은 아버님 찢어지는 가슴을
어떻게 견뎠으며
세상을 잃은듯한 허진한 마음을
어떻게 견뎠을까
기재사 모실 때마다 痛哭하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5․16 혁명으로 수리조합 退職하고
서울로 移徙한 후 어려운 속에서도
우리 6남매 잘 키우시려 직업도 수없이 바꾸면서
약주 한잔하시고 歸家하시는 날엔
육남매 앉혀놓고 항상 하시던 말씀
孝道와 友愛는 天下之大本으로
오우할아버지 本을 받아 다시 한번 꽃 피우라
천번 만번 强調하고
일천구백육십오년 정월초하루 아침
평소 생각하신 사람 사는 根本을 깔끔하게 整理하여
家訓으로 制定하여 육남매에게 주시면서
與天同樂을 窮極目標로
實薦事項을
맑고 넓은 마음으로 億萬蒼生 도와주고
나를 알고 勤勉하여 몸과 집을 保存하라.
당시엔 어린 나이 아버님의 깊은 뜻을 어떻게 알랴마는
지금와서 생각하니 말말이 敎訓이고
뜻마다 천리라
어린 자식 생각할 때
어떻게 實踐할지 아득하고 아득하여
오늘 저녁 이 시간에 아버님 더욱 그리워집니다.
면목동 이사하여 屋號를 지으시니
그 이름이 五和堂이라.
우리 오형제가 형님은 友愛하고 아우는 恭敬하여
이 세상에 다시없는 효도, 우애 집안으로
세상의 本이 되는
우리 집안 만들라는 當付를 하셨는데
오늘 저녁 돌이켜 크게 反省할 일이 한둘이 아닙니다.
제대리 祭室이 무너져 돈을 모아 重修하셨으며
일천구백사십육년 五友亭享祀가 中斷되고
三江書院 碑石이 무너질 地境이어
두고두고 밤잠 이루지 못하시고 걱정 걱정 하시던 중에
일천구백칠십칠년에 五友亭 重修 工事 始作하여
이년후 竣工되고 三江祠 享禮가 그제야 復舊되어
每年 施行하게 되고
五友先生實記를 精誠껏 刊行하여
後孫들과 一般에게 孝道 友愛 알렸으며
무량원, 한골, 파서의 아홉위의 山所를 移葬,
碑石, 床石을 建立하셨고
일천구백팔십사년 野牧 山所에 石築工事 竣工하고
한골에 오우할아버지 삼형제분의 山所移葬, 碑石, 床石, 石築工事도 마무리 하셨습니다.
그 해에는 隨筆集 ‘幸福의 發見’도 執筆하시어
文人집안의 傳統을 이으시고
回甲해를 맞이하여 長子 雲基와 海外旅行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美人은 薄命이라 하늘이 猜忌한 듯
잠드신 사이에 뇌경색이 發病하여
이후부터 이십삼년을 鬪病 하셨습니다.
공교롭게 오른쪽에 不具를 당하셔서
言語不便 身體 不便 수많은 苦痛당하시고
모든 행동 왼손으로 생활하는 어려움을 어떻게 견뎠으며
이십삼년 긴긴 세월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생활을 하셨습니다.
발병 이년 후부터 붓글씨를 시작하여
수많은 公募展에 入賞을 하셨으며
집집에 精誠들인 作品을 膳物하여
萬人의 본보기가 되셨습니다.
스스로 정해놓은 日課表 徹底하게 實踐하니
世上 萬人 하는 말이
어쩌면 病中에 있는 분이 저리도 端正하며
모든 사람 挫折하는 깊은 병 속에서도
스스로의 意志로 어려움을 克復하는 이는 참으로 드물단다.
우리 형제 成長하여 저 나름 생활하나
혹 남의 흉 듣지않고 바르게 생활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부모님의 恩德이라
하늘같은 그 恩惠 무엇으로 報答해야
萬分의 일이라도 갚을 수 있으리오.
이제 오늘 마지막으로 아버님께 고합니다.
마음속에 머릿속에 보고싶은 아버님은 그대로 계시건만
눈을 뜨고 쳐다보면 보고싶은 아버님은 이미 아니 계시옵고
仁慈하고 多情하게 웃으시는 그 모습만
우리 육남매, 일곱 손자, 일곱 손녀 오로지 뵐 뿐이니
嗚呼 哀哉라,
아버님의 높은 敎訓, 아름다운 그 마음을 어떻게 뵈올까요
家訓 주신 그날 아침 아버님 말씀 중에
우리를 있게 해주신 삼십위 할아버님
그 뜨거운 피가 綿綿히 이어오니
祖上님이 가셨다고 어찌 없다 하겠느냐
아버님이 하신 말씀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 몸 속에 조상님의 높은 뜻이 그대로 살아있어
내 한 몸이 잘못하면 바로 그게 不孝의 始作이라
단 일초, 단 일분이라도 어긋남이 없이 행동을 하렵니다.
오십년을 주신 교훈 이제 다시 못 듣지만
어버님의 말씀 말씀 언제나 記憶하여
자라나는 손자 손녀 바르게 자라도록
육남매 모두 같이 마음으로 다짐하여
이 세상 億萬蒼生 도와주는 사람되고
아름다운 우리 家風 바르게 이어가는
우뚝 선 인간으로 키우도록 하렵니다.
이제는 아버님 보내드릴 시간입니다.
哀痛하고 切痛한 맘 하늘을 찌르오나
한번가신 아버님 마음속에 간직하고
하늘나라 좋은 곳에 먼저 가신 조상님과
이제 相面하시어서 永遠 福樂 누리소서
먼저 간 남서방도 바로 찾아 주시어서
그 사람의 아픈 맘도 어루만져 주옵소서
이승에 남아계신 우리 엄마 白壽 無病 바라오며
육남매 내외 모두 健康하게 하시옵고
열네 손자 하나 같이 자신의 뜻 펼치어서
이세상의 밝은 빛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보고싶고 그리운 우리 아버니 머나 먼 길
안녕히 가시옵소서.
2006년 5월 29일
不孝子 垠基 감히 몇자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