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정할아버지/오우선생실기

五友先生實記 卷2 行狀- 柳厚祚

eungi5 2012. 1. 12. 11:25

 

五友先生實記 卷2

 

行狀1

 

驪興閔氏 自勝2國爲奕閥 大提學 諱 麗政亂 退居以終 其文章節行 冠當世

奕클혁,閥공훈벌,提끌제,諱꺼릴휘,愉즐거울유,

冠갓,관례.볏.관례(冠禮).성년(成年).으뜸되다.뛰어남.갓을쓰다.덮음

행장

여흥 민씨는 고려때부터 이름난 문벌이었다. 대제학 휘 유는 고려 정사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에서 물러나 삶을 마쳤는데 그의 문장과 덕행이 그 세대에 으뜸이었다.

三傳入 本朝 有諱官吏曹參議 生諱江湖金先生叔滋女 弱冠歿 生諱進士 是爲公考也 妣 慶州李氏 縣監 女 生五男

曹마을조,娶장가들취,滋불을자,歿죽을몰,熲빛날경,考상고할고,妣죽은어미비,

삼대가 지나 본조에 들어와서 휘가 근이라는 분이 있어 벼슬이 이조참의였고, 휘 제라는 분을 나았다. 이 분이 강호 김선생 숙자의 따님에게 장가를 들었으나 약관으로 별세했다. 이 분이 진사 휘 경을 낳았는데 바로 공의 아버님이다. 어머님은 경주 이씨 현감 금의 따님인데 아들을 다섯을 낳았다.

九齡字龜遠號勗齋· 曰 九韶字成遠號敬齋· 曰 九淵字深遠號友于亭· 曰 九疇字大遠號無名堂· 曰 九敘字任遠號三梅堂 俱有至性 庠公敎率甚嚴 童丱不慢遊戱 幷登佔畢門 得聞爲學大方 所與交 皆一時選人 以陸氏五九·馬氏五常3比之

齡나이령,勗힘쓸욱,韶풍류이름소,疇밭두둑주,敘차례서,俱함께구,庠학교상,

率거느릴솔,丱총각관,慢게으를만,幷어우를병,함께,佔볼점,選가릴선,

맏이 구령의 자는 귀원, 호는 육재이고, 구소의 자는 성원, 호는 경재이며, 구연의 자는 심원이고 호는 우우정이다. 구주의 자는 대원, 호는 무명당이고, 구서의 자는 임원, 호는 삼매당인데 아울러 지극한 성행이 있었다. 상공(진사공)의 가르침이 매우 엄격하여 함부로 노닥거리지 못했다.

아울러 점필재 문하에서 배워 학문하는 큰 방도를 알았고, 더불어 사귀는 사람도 모두 한 시대의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이들을 육씨의 오구와 마씨의 오상과 비교하였다.

親喪易戚俱盡 友愛甚篤 共案而食 大被而寢 日用事爲之所與同者 問學頤經而已 觀者艶歎 及戌甲禍作 畢門諸賢 流殺殆盡 五公 遂屛跡絶仕進 惟求志互益 口不出危言 愛三浪山水 構亭其上 杖履漁釣自適 時從田夫歡如也 常不相離 湛樂無一忤 作鶺鴒歌4相和 其 曰 題彼鶺鴒 載飛載鳴 夙興夜寐 無忝爾所生 此其免禍之戒云

戚슬퍼할척,被이불피,頤턱이,봉양하다.艶고울염,부러워함.禍재화화,殆위태할태,

屛병풍병,가리다.막다.仕벼슬할사,惟생각할유,꾀하다.忤거스를오,彼저피,그,寐잠잘매,忝더럽힐첨.

친상에 이척을 아울러 다했고 우애가 매우 돈독하여 상을 함께 해서 먹고 이불을 함께 덮고 잤다. 날마다 함께 학문을 배우고 경서를 연구하여 보는 사람이 흠탄하였다.

무오년과 감자년에 사화가 일어나서 점필재 문하의 여러 현인이 거의 모두 귀양가거나 죽음을 당했다. 이 때 다섯 분은 자취를 숨겨서 벼슬길을 단념하고 오직 학문에 전념할 뿐, 입에는 위태한 말을 담지 않았다. 삼랑 산수를 사랑하며, 그 강가에 정자를 짓고, 거닐며 낚시질도 하여 마음내키는 데로 즐기며, 가끔 농부들과 즐겁게 지내기도 하였다. 다섯 분은 항상 서로 떠나지 않고 서로 즐거워하며, 한 가지도 거슬림이 없었다. 척령가를 지어 서로 화합하였다.

척령가는 ‘저 척령을 보니 날기도 하고, 울기도 하네, 일찍 일어나고, 밤 늦게 자서 너를 낳으신 분에게 욕되게 말라.’라는 노래로 화를 면하게 경계하였다.

任公虎臣按闑5 聞行誼 欲審其名實 屛騶從 夜猝至寢所 五公長枕臥 極敬歎 扁其亭 曰 五友 因題贊及詩 薦于 朝 朝廷嘉之 幷除官以褒之 皆不起 由是名聞朝野 搢紳大夫6 之南者 咸續和

按누를안,당기다.문지방얼,誼옳을의屛병풍병,가리다.,騶마부추.猝갑자기졸,扁넓적할편,액자,현판.

贊도울찬,이끌다.인도하다.薦천거할천.嘉아름다울가,幷어우를병,함께,褒기릴포,

그 때 임호신 공이 감사로 있으면서 다섯 분의 행의를 듣고 소문과 실제를 밝히고자 했다. 추종을 물리치고 밤에 갑자기 침소에 가니 다섯 분이 기다란 배개를 베고 함께 누워 있었다. 매우 감탄하여 그 정자에 오우라는 현판을 걸고 이어서 찬과 시를 쓴 다음. 조정에 천거하였다. 조정에서도 이를 아름답게 여기고 아울러 벼슬을 제수해서 포장했으나 모두 취임하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그 명망이 조야에 높았고, 진신 대부로서 남방에 오는 사람은 잇달아 시를 지어 화답하였다.

嘉靖癸亥7 立廟亭上 竪碣於下 壬燹 亭廟碑蕩無存 惟磨崖8迹不泐 行過者指點 其後者孫孱 家又火 所藏遺稿 及當時知友還往詩牘 盡入之

靖편안할정,竪더벅머리수,천하다,비루하다.세우다.碣비갈,비석,燹들불선,야화,

迹자취적,蕩쓸어버릴탕,泐돌갈라질륵.글씨를 새기다.孱잔약할잔,나약.遺끼칠유,稿볏집고,牘편지독,

가정 계해년에 정자옆에 사당을 짓고 그 아래쪽에 비석을 세웠는데 임진왜란에 정자와 사당과 비석이 모두 없어지고 말았다. 다만 정자와 사당이 있었던 빈터만 남아 있어 오가는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후 자손들이 잔약하고 집에 또 화재를 당해 보관했던 유고 및 당시 지우들 사이에 오고 간 시고와 편지 따위가 다 타 버렸다.

孝廟庚寅9 知府10崔公煜 登亭址感慨 試諸生 以訪五友亭有感 爲題 集鄕老裒五公實蹟 報闑司 遠近士論峻發

府곳집부,煜빛날욱,感느낄감.慨분개할개,슬픔.試시험할시,訪찾을방,裒모을부,峻높을준

효종 경인년에 지부(밀양부사) 최욱공이 정자터에 왔다가 슬프게 생각하고 여러 유생을 시험하면서 ‘오우정을 심방했다가 느낌이 있다.’ 라는 것으로 제목을 삼았다. 고을 노인들을 모아 다섯 분의 실적을 수집한 다음. 감사에게 보고했고, 그 후 원근 선비들의 공론이 크게 일어났다.

乙亥(1675)仍其址重建 甲申(1704)又立廟亭左 肅廟 壬午(1702)入享 權遂庵尙夏 手筆揭祠號 曰 三江 其下竪碑一 如前 閔蟾村遇洙宗人也 撰其文

仍인할잉,尙오히려상,揭들게,祠사당사,蟾두꺼비섬,撰지을찬

그리하여 을해년에 그 터에 다시 정자를 지었고, 갑신년에는 정자 왼쪽에 사당을 세웠다. 숙종 임오년에 삼강서원에 입향했고, 권수암 상하가 삼강이라는 사당 당호를 손수 써서 걸었다. 그 아래쪽에는 예전과 같이 비석을 세웠는데 종인민섬촌 우수가 그 글을 지었다.

嗚呼 海左眞元之氣 國朝休明之治 先啓於嶺南 而畢齋先生首倡11焉 當時及門 金文敬· 鄭文獻 二先生 爲之冠冕12 而鴻龐魁碩 雲蒸霞蔚 指不勝僂

嗚탄식소리오,倡여광대창,노래,번창,冕면류관면,鴻큰기러기홍,龐클방,

魁우두머리괴,碩클석,蒸찔증,霞놀하,멀다.蔚성할울,아름다움,僂구부릴루,

아아, 해동의 참 원기와 나라의 아름다운 문화가 영남에 먼저 계발되었는데 점필재선생이 앞장서서 인도하였다. 당시 문인으로서 김문경, 정문헌 두 선생이 첫째였고, 그 외 큰 덕과 뛰어난 인재가 구름이 치솟 듯, 안개가 자욱하듯 하여 손가락으로 이루 꼽을 수 없었다.

於是五公者 出則於畢翁家爲彌甥矣 塤唱篪和 承受旨訣 亦豈餘弟之可以比幷也哉

彌두루미,널리.甥생질생,외손자,塤질나발훈,唱노래창,篪저이름지,承받들승,旨맛있을지,아름답다.訣이별할결,

이럴 때에 이 다섯 분도 점필재 집의 외손으로 태어났다. 훈을 불고, 지로 화답하면서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어찌 다른 제자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獨於殄瘁13之日 得免殊累之禍 而托迹山水 寓樂簞瓢14 幽貞含章 令聞不隕者

殄다할진,끊다,죽다.瘁병들췌,殊죽일수,累묶을루,托밀탁,받침.寓머무를우.

簞대광주리단.瓢바가자표.幽그윽할유.隕떨질운

그 후 선비들이 남김없이 죽음을 당하던 날에 연루되는 화를 면하고 산수 사이에 자취를 의탁해서 도시락 밥을 먹고 표주박 물을 마시면서 즐겁게 살았다. 곧음을 감차고 빛을 숨겼으나 아름다운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其妙道精義 百世之下 善觀者猶有所想像而感慕處 不亦可敬矣乎 有一於此 尙爲世稱述 況於五乎 生倂一鄕尙爲世所難 況於兄弟乎 是皆可以備書耳

精자세할정,述지을술,倂아우를병,나란함,다툼.

그 오묘, 정밀한 도의는 백대 후의 후생들이 상상하여 감모하고 공경할 만하지 않은가. 이러한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세상이 칭찬할 터인데 하물며 다섯 사람이겠는가. 한 고을에서 함께 태어났다 해도 세상에서 어렵게 여길터인데 하물며 형제간이겠는가. 이것은 모두 갖추어 기록한 만 하다.

友于亭十一代孫圭鎬15 三梅堂九代孫光魯16 以五公遺事合錄一通 來囑余爲行狀之文 辭不獲 謹依其遺事序次 而略加檼括如右 以俟夫秉筆者採取云爾

鎬호경호,魯노둔할노,錄기록할록,囑부탁할촉,狀형상장,獲얻을획,

略다스릴략,檼바로잡을은,도지개,括묶을괄,俟기다릴사

우우정의 십일대손 규호와 삼매당 구대손 광로가 다섯분의 유사를 한 벌에 합쳐 기록하고 나에게 와서 행장짓기를 부탁한다. 사양해도 되지 않기에 삼가 그 유사의 차례에 의해 위와 같이 대략 바로 잡아서 사필 잡은 사람의 채택을 기다린다.

上之五年戊辰之仂上浣17                                                         仂나머지륵,浣빨완

지금 임금(고종) 5년 무진 윤사월 상순

大匡輔國崇錄大夫原任議政府 左議政 兼 領 經筵事監春秋館事 豊山 柳厚祚18 謹狀

大匡輔國崇錄大夫정1품,匡바룰광,輔덧방나무보,대신,筵대자리연,祚복조,

대광보국 숭록대부 원임 의정부 좌의정 겸 영 경연사감춘주관사 풍산 유후조 삼가 행장함.

  1. 행장: 사람이 죽은 뒤에 그 사람의 평생의 행적을 기록한 글. 한문체(漢文體)의 하나이다. [본문으로]
  2. 자승: 자기가 남보다 더 낫다고 여김. [본문으로]
  3. 육씨오구,마씨오상: 돌림글자로 자와 호를 지은 사람. 제갈량, 즉 제갈공명(諸葛孔明)과도 친교를 맺었던 마량(馬良)은 형제가 다섯이었다. 다섯 형제는 모두 자(字)에 상(常)이란 글자가 붙어 있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그들 형제를 가리켜 ‘마씨오상(馬氏五常)’이라 일컬었다. 형제가 모두 재주가 뛰어났으나 그 중에서도 마량이 가장 뛰어났으므로 그 고장사람들은 말하기를 “마씨오상은 모두 뛰어나지만 그 중에서도 흰 눈썹이 가장 훌륭하다(馬氏五常白眉最良)”라고 하였다. 즉, 마량은 어려서부터 눈썹에 흰 털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불렸던 것이다.  [본문으로]
  4. 척령가: (詩經 小雅 小宛篇) 題彼脊令 載飛載鳴 我日斯邁 而月斯征 夙興夜寐 無忝爾所生을 참고한 듯. [본문으로]
  5. 안얼: 1.누르다. 어루만지다. 2.깊이 생각하여 조사하다. [본문으로]
  6. 진신대부: 벼슬아치의 통칭, 지위가 높고 행동이 젊잖은 사람. [본문으로]
  7. 가정: 명대(明代) 세종(世宗)의 연호(1522∼1566) [본문으로]
  8. 마애: 석벽에 불상이나 글자, 그림 따위를 새김 [본문으로]
  9. 효묘 경인: 효종 경인년 1650년 [본문으로]
  10. 지부: 부지사(府知事), 밀양부지사 [본문으로]
  11. 수창: (새로운 것을) 처음으로 제창(提倡)하다, 맨 처음으로 부르짖다 [본문으로]
  12. 관면: 옛날 임금이나 관리가 쓰던 모자, (외관상) 장엄하고 당당하다, 관모 [본문으로]
  13. 진췌: 가난하다, 궁핍하다, 곤궁하다 [본문으로]
  14. 단표: 도시락과 표주박을 아울러 이르는 말, 도시락에 담긴 밥과 표주박에 든 물이라는 뜻으로, 청빈하고 소박한 생활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본문으로]
  15. 圭鎬: 譜帖에 기록이 없음. 規鎬는 있음.規鎬: 구연-裕-應湛-仁復-孝先-輶-友參-之洙-百慶-贊魯-致龍-規鎬 [본문으로]
  16. 光魯: 九敍-瑞昌-仁興-孝復-裕后-汝聖-學汶-忠彦-百春-光魯 [본문으로]
  17. 상완: 초하루부터 초열흘까지의 사이. [본문으로]
  18. 유휴조:1798년(정조 22)∼1876년(고종 13).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재가(載可), 호는 매산(梅山)‧낙파(洛坡)‧영매(嶺梅). 도정(都正) 유심춘(柳尋春)의 아들이다.1858년(철종 9) 정시문과에 급제한 뒤 부사‧부호군을 지내고 1864년(고종 1)에 이조참판, 이듬해 공조판서를 지냈으며,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남인계 인사 중용책에 따라 1866년 우의정-정1품에 이르렀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