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정할아버지/오우선생실기

湖中儒生通文- 朴重植 등(선생 호칭에 대한 논의)

eungi5 2012. 6. 12. 15:52

 

(오우선생실기 221쪽)

湖中1儒生通文

호중유생통문

悚瀆 于僉尊監 伏聞2士林循謀3 重修廟宇 斯文之幸 孰大於此 而僉君子尊慕誠敬 殆令人感服4

悚두려워할송,瀆도랑독,孰누구숙,殆거의,대부분, 위태할태,

송구스럽지만 여러분께 아룁니다. 듣건데 사림이 의논해서 사당을 중수했다니 사문에 다행함은 무엇이 이보다 크겠습니까. 여러분께서 선현을 추모하는 정성이 거의 사람을 감복하게 했습니다.

 

第()地雖相遠 尊師則有一也 人雖各處 趍向無二也 庠序5學校 無非縫腋之所而別無一人之所主 又無彼此之各異 則 尊其師 學其行 豈有忽焉哉 生等有一說於僉君子之前 而必駭視6

趍느릴치,縫꿰맬봉,腋겨드랑이액,僉다첨,여러.駭놀랄해

지역은 비록 서로 멀어도 스승을 높이는 도리는 오직 하나로 같으며, 사람은 비록 각처에 떨어져 있으나 마음이 쏠림은 다른 길이 없습니다. 상서와 학교는 선비가 공부하는 곳이 아님이 없지만 특히 한 사람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또 서로 간의 다른 의견도 없는 즉, 그 스승을 높이고 학문을 실천함에 어찌 소홀함이 있겠습니까. 우리들이 여러분 앞에 한 말씀 올리거니와 반드시 해괴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五友先生之行誼 出於秉彝7之天 而孰不慕之 孰不敬之 當其刱始8幷享之日 抑有士林之所共謀耶9 其將子孫私獨擅10耶                                                                  誼옳의의,刱비롯할창,享누릴향,擅멋대로천

오우 민선생의 행의는 타고난 천성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누가 흠모하지 않겠으며, 누가 공경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아울러 향사하기 시작하던 날, 사람들이 함께 의논한 바가 있었습니까. 아니면 그 자손들이 사사로이 한 일입니까.

 

年前秪謁11祠宇 奉審12位板 板面所題 書公字 不書先生 何也 似非學宮13尊賢之所稱 乃如家塾14爲祖之所稱也 至今訝惑15未嘗16解矣

秪벼처음익을 지,似같을사,塾글방숙,訝맞을아,惑미혹할혹,

연전에 사당을 지알하면서 위판을 살펴보았는데 판면에 공이라 적었고, 선생이라 쓰지 않았던데, 이것을 무슨 까닭입니까. 이것은 학궁에 어진 이를 높혀 일컫는 것과 같지 않고, 일반 가정의 서당에 선조를 호칭하는 것과 같았는데, 지금까지 그 의혹을 풀지 못합니다.

 

盖先生行篤義高 爲百世之師範 則可以書先生二字於堂號下 而不可存公字也 公字雖爲尊稱之意 然凡有諡號17某公某先生則有美矣 而但姓字下 乃書公字 則似未有至 敬之意也 諡시호시

대개 선생의 독실한 행동과 고상한 의기는 백대의 사범으로 될 만하니 선생이란 두 글자를 당호 밑에 씀이 옳으며, 공이라는 글자를 남겨둠은 옳지 못합니다. 공이라는 글자도 존칭하는 뜻이 되기는 합니다. 그런데 시호가 있어, 그 시호를 붙여서 아무 공, 아무 선생이라 한다면 아름다움이 있지만 다만 성 밑에 공이라는 글자를 씀은, 지극히 공경하는 뜻이 없는 듯 합니다.

 

至於文廟 所重在孔夫子而書王字 四聖18則書公字 十哲19與東西廡諸賢 書 侯字與姓名者 非但儒生尊敬之道有所重也 其於諸賢 如有尊敬之意也                                                       廡집무,侯과녁후

문묘에서는 중하게 여김이 공부자에게 있으므로 공부자에게는 왕자를 썼고, 사성에게는 공자를 썼습니다. 그런데 십철과 동, 서무에 모신 여러 현인에게 후자와 성명을 쓴 것은, 다만 유생들의 존경하는 도리에 중하게 여기는 데가 따로 있는 것 뿐이 아니고 여러 현인에게도 존경하게 여기는 뜻이 있는 듯 합니다.

 

我國從祀文廟之賢 入文廟則具書姓名 入院廟則書先生者 崇奉德義 敬其尊慕也

우리나라 문묘에 종사하는 여러 현인도 문묘에 들어가면 성명을 아울러 적었으나 원묘(서원에 함께 세운 사당)에 들어가서는 선생이라 쓴 것은 덕의를 높혀서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三江祠中 旣無五聖20之奉 又無程朱21之奉 只享此五先生 則 爲尊慕之道 可以書先生 而盡奉敬之道矣

삼강사 안에 이미 오성을 받들지 않았고 또 정자, 주자를 받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 다섯분 선생을 향사할 뿐인즉 존모하는 도리에 선생이라 쓴 다음이라야 공경하게 받드는 도리를 다하는 것입니다.

 

凡人有賢祖 而爲其祖立祠者 士林不爲共焉 則 書其位板之際 欲書先生 則 以子孫稱先生 於祖先 有所未安 故書公字者多矣                                                                               程단위정,際사이제

무릇 사람에게 어진 조상이 있고, 그 조상을 위해 사당을 세울 적에 사림이 참여하지 않고, 그 위판에다 선생이라 쓰려고 하면, 자손으로서 조상을 선생이라 일컬음은 타당하지 못한 바가 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공이라는 글자를 쓴 데가 많습니다.

 

以此祠位板觀之 則 無異乎是也 況且春秋享祀 靑襟22雲集 官有奠幣之禮23 搢紳24章甫25 皆曰吾先生 則何不書先生 而書公字也

襟옷깃금,奠제사지낼전,幣비단폐,搢꽂을진,紳큰띠신,甫클보,

그리고 이 사당의 위판으로 본다면 그런 경우와 다름이 없습니다.

하물며 봄, 가을 향사 때에 선비들이 많이 모이고 관에서 폐백드리는 예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진신과 선비가 모두 ‘우리 선생’이라고 하는데 어찌해서 선생이라 쓰지 않고 공이라 하는 것입니까.

 

今因移安26之時 改題位版而還安 則 僉君子尊賢之誠 有加於重修之役也 雖或有改題未安議 然亦有明證之端                                                                                                   版널판,役부릴역,證증거증

이번 이안할 때에 위판을 고쳐 써서 도로 봉안한다면 여러분께서 어진 이를 높이는 정성에 사당을 중수하는 역사를 더하게 될 것입니다. 고쳐씀이 미안하다는 의논이 비록 있더라도 이 것에 대해서는 또 분명한 증거가 있습니다.

 

漢唐宋以來 加諡美號於孔夫子者有矣 且儒賢未得諡號之前 配享於鄕院 而終有贈諡 則 改題其位板 取其美矣                                                                                                            贈보낼증

한, 당, 송 이래로 공부자에게 아름다운 시호를 더 올린 적이 있습니다. 또 유현으로서 시호를 받기 전에 고을 서원에 배향되었다가 나중에 시호가 내리게 되면 그 위판을 고쳐 쓰는데 그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且士夫家贈職及易代之日 改題位板 自古有之 今日改題五先生之位板 豈有未安等節哉   職벼슬직,等가지런할등

또 사대부 집에도 직품이 추증되거나 세대가 바뀔 때면 위판을 고쳐 쓰는 일이 예부터 있습니다. 그런테 오늘날에 다섯 선생의 위판을 고쳐 쓰더라도 미안한 이유가 어찌 있겠습니까.

 

生等湖西一末少年 聞見至淺 雖不識儒林之事面 然以他鄕鄕賢祠與書院所題位板之規比之 則 玆祠規模 大有異矣 道無二焉 儒不各異 則 將用夫儒林通行之規矣 伏願僉君子 詳量採施 未知如何 淺얕을천,規법규,比견출비,模법모,量헤아릴량

생등은 호서한 작은 소년(학문이 낮은 사람이라 스스로 일컬음)입니다. 듣고 봄이 지극히 옅어서 유림의 사면은 알지 못합니다. 비록 그러나 딴 고을 향현의 사당이나 서원에 모신 위판에 쓴 규례와 비교하면 이 사당의 규모와 크게 다름이 있습니다. 道에 둘이 없고 유림도 각각 다르지 않은 즉, 유림에 공통으로 시행되는 규례대로 할 것입니다. 원하건대 여러분께서 자세히 요량해서 시행함이 어떠하올지요.

朴重植

孫東復

 

己亥年間 院儒 請 於遂庵先生27 得三江祠三大字 揭諸廟門之楣 得象友堂三大字 揭諸講堂 搢紳瓊律 多揭壁上 而且於當初奉安時 先輩諸議 以處士某公 題位板矣 數年前黃澗儒生書 曰 宜以先生字改題云云 故今於改題時 以先生字書之

楣문미미,瓊옥경,

기해년(1719)에 院儒가 遂庵先生에게 청해 三江祠라는 세 大字를 받아 사당 문 처마에 걸고, 象友堂이라는 세 大字는 講堂에 걸었다. 그리고 搢紳들의 珠玉같은 詩律도 벽면에 많이 걸었다. 또 당초 봉안할 때, 선비들이 의논하여 처사 아무 공이라고 위판에 썼다. 그런데 수년 전에 黃澗 유생들이 편지를 보내 ‘선생으로 고쳐 씀이 마땅하다.’한 까닭으로, 이번 고쳐 쓸 때에 선생이란 글자를 썼다.

  1. 호중: ‘충청남도’와 ‘충청북도’를 아울러 이르는 말 [본문으로]
  2. 복문: 엎드려 듣건데 [본문으로]
  3. 순모: 의견의 모아 [본문으로]
  4. 감복: 감동하여 충심으로 탄복함. [본문으로]
  5. 상서: 상, 서 모두 학교. 은대에는 서, 주대는 상이라 했음. [본문으로]
  6. 해시: 놀라서 쳐다봄. [본문으로]
  7. 병이: 타고난 천성을 그대로 지킴 [본문으로]
  8. 창시: 시작하다. [본문으로]
  9. 야: 구의 끝에 쓰여 의문이나 반문의 어감을 나타냄 [본문으로]
  10. 독천: 혼자서 마음대로 일을 처리함 [본문으로]
  11. 지알: 공경하는 마음으로 뵈옵는 것. [본문으로]
  12. 봉심: 예전에, 임금의 명을 받들어 능이나 종묘(宗廟)를 보살피는 일을 이르던 말 [본문으로]
  13. 학궁: 인재 양성을 위하여 한양에 설치한 최고 유학 교육 기관 [본문으로]
  14. 가숙: 개인이나 집안끼리 경영하는 글방. [본문으로]
  15. 사혹: 의혹, 의심 [본문으로]
  16. 미상: 아직도. [본문으로]
  17. 시호: 예전에, 임금이나 정승, 유현(儒賢)들이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칭송하여 주던 이름 [본문으로]
  18. 사성: 공자의 제자 曾參은 宗聖公, 顔回는 復聖公, 공자의 손자 子思는 述聖公, 孟子가 亞聖公이다. [본문으로]
  19. 십철: 공자의 문인 중 열사람의 명철한 사람. 즉 子張, 閔損, 冉伯牛, 仲弓, 宰我, 子貢, 冉有, 季路, 子游, 子夏 [본문으로]
  20. 오성: 고대 중국의 제왕, 즉 堯, 舜, 禹, 湯, 文王 [본문으로]
  21. 程子 朱子: 정자는 송나라 사람 程顥와 程頤 형제를 일컫는 말인데 정이를 지칭한 경우가 대체로 많음. 주자는 송나라 사람 朱熹를 일컫는 말, 모두 큰 성리학자로서 많은 저서를 남겨 후인의 추앙을 받음. [본문으로]
  22. 청금: 옛날, 학생, 학도, 선비 [본문으로]
  23. 전폐: 예전에, 나라의 대제(大祭)에 폐백(幣帛)을 올리는 일이나 그 일을 맡아 하던 사람을 이르던 말. [본문으로]
  24. 진신: 진신, 벼슬아치의 총칭, 관리 또는 퇴관한 사람 [본문으로]
  25. 장보: 유학(儒學)을 공부하는 선비 [본문으로]
  26. 이안: 신주(神主)나 영정(影幀) 따위를 다른 곳으로 옮겨 모심 [본문으로]
  27. 수암선생: 권상하.1641년(인조 19)∼1721년(경종 1).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안동. 자는 치도(致道), 호는 수암(遂菴)·한수재(寒水齋). 우의정, 좌의정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