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인의 ‘아도니스’라는 책에는 자녀 교육에 관한 이런 글이 있다.
“너희의 아들 딸을 사랑하라. 성장하여 스스로의 빛을 갖기 전, 아이는 순백의 상태와 같다. 순백의 아이에게 주어지는 욕구는 욕망이 아닌 오로지 본능, 생물로서 당연한 생리적 본능과 너희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본능뿐이다.”
큰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데리고 와, 죄를 저지른 이 아이를 어찌 벌하면 좋겠냐는 아비의 질문에 라오스 신은 이렇게 답했다.
“죄가 아니라 不知에서 온 행동일 뿐이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것이 나쁜 일인지, 좋은 일인지 판단할 수 없다. 그러므로 아이에게 잘잘못을 따질 수 없다. 네 기준에 아이가 잘못을 했다면 다시는 그러지 않도록 따끔하게 훈계만 내려라.
그러면 아이는 그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걸 認知하게 된다. 그럼에도 같은 잘못을 저지른다면 그때 벌해도 늦지 않다.
아이에게 죄가 있다면 그건 아이의 죄가 아니라 아이가 그렇게 하도록 방치한 어른의 죄다. 아이는 너의 피를 이어받아 너를 가장 닮았다. 아이의 행복은 너의 행복이며, 아이의 슬픔은 너의 슬픔이다. 아이의 미래는 너의 미래이며, 아이의 허물은 너의 허물이다. 너부터 반성하라.”
아이를 버리려 하는 여인을 마주한 라오스가 말했다.
“아이를 안아 주어라. 아이의 외로움을 외면하지 마라. 아이는 너희에게 내려진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이자 기적이다. 가장 큰 축복을 저버리는 이들은 작은 축복조차 누릴 자격이 없다.”
주변을 보면, 가족이나 아이들로 인해 힘들어 하는 이들을 가끔 보게 된다. 겉으로 보면 세상의 모든 행복을 다 가진 듯한 이들도 그 속으로는 많은 걱정과 번민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많은 현인들은 그 해결책을 자신의 마음과 행동에서 찾으라 가르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알게 되는 일이지만, 머리 큰 아이들이 내 말을 잘 듣든가? 내 말대로 순순히 따라 오던가?
끌탕만 치고 있을 일이 아니다. 속 병 생기고, 건강 다 잃기 전에, 내 행복은 내가 찾아야 하는 법. 문제는 거의 아이에 대한 기대에서 생기는 법.
아이들이 나에게 축복이자 기적이 되려면, 힘들지만 마음에서 그들을 떠나 보내자. 기대 수준을 낮추자. 저희들끼리 잘 사는 것 같으면 그걸로 만족하자. 혹시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전화 오면 그것을 축복이라 생각하고, 어쩌다 용돈이라도 보내 오면, 역시 나의 아이는 다르다고 생각하자.
십여 년 쯤 전에, 지금 살아 계시면 팔십대 중반쯤 되셨을 목사 한 분과 교회는 다니지 않지만, 매 달 한 번 정도 만나 식사를 하며 지낸 적이 있다. 하루는 오랜 목회 생활 중에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말씀이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당시 뇌졸중을 앓고 계셨던 목사님은 다음 달 모임에 작은 종이를 건네 주셨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던지 뿌린 대로 거두리라(갈6장).’
가신 목사님이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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