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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길 도보여행을 마무리 하면서

eungi5 2021. 8. 29. 18:18

 

 

 

 

 

휴전선길 도보여행을 마무리 하면서

 

장거리 도보여행을 할 때, 처음 가지는 생각이 정말 또 하는 거야?’하는 것이다. 말이 도보여행이지 하루에 백리 길을 걷는 것은 참 힘드는 일이다. 늘 바쁘게 생활하는 사람에게는 사치스런 일이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이 여행을 지금까지 계속하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번 휴전선길 도보여행이 가지는 의미는 한반도 동서남북, 종횡여행의 완성이라는 것에서 의미가 크다.

여행의 대강을 정리하고자 한다.

 

1. 날짜별 여행의 모습

회차 날짜 구간 거리km 경비() 비고
1 2021. 7. 1 문산 성동4거리-율곡리-어유지리 38.5 23,800  
2 7. 3 어유지리-군남-신탄리역 43 9,300  
3 7. 9 신탄리역-노동당사-철원 김화 와수리 38.9 52,000  
4 7. 10 와수리-근남-수피령-다목리-화천군 41.4 48,800  
5 7. 20 화천-딴산-평화로-해산터널-평화의댐 37.5 70,800  
6 7, 21 평화의댐-오천터널-오미리-양구군 33.8 12,800  
7 8. 16 양구군- 동면-돌산터널-해안면 29.7 55,800  
8 8. 17 해안면 편치볼-서화면-인제 북면 원통 31 15,000  
9 8. 26 원통-한계-만해마을-백담사입구-속초 42 148,900  
9   335.8 437,200  

 

2. 준비물

세면도구(면도기, 치약, 칫솔,치간치솔 등), 겉옷, 티셔츠, 내의, 양말. 모자, 썬크림, 선글라스, 우의, 상비약(소화제,지사제,두통약,면봉,반창고,연고,손톱깍기,소염진통제 등), 핸드폰, 이어폰, 충전기, 보조기, 셀카봉. 돋보기, 팔토시. 사탕, 스틱. 장갑, 지갑, 시계, 손수건, 목수건. , 수첩.

 

3. 이번 여행의 특징

. 휴전선길 도보여행의 시작

해파랑길, 남해안길, 서해안길을 여행하고 마음속으로 휴전선길도 한 번 걸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2019년이다. 그러나 선뜻 시작하지 못하다가 올 해 더 늦기 전에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하였다. 그래야 한반도 남한 만이라도 동서남북, 종횡으로 여행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휴전선길이 참 부담스러웠던 것이 경기도쪽은 주로 평지이지만, 강원도로 가면 산길을 걸어야 하고, 더군다나 인적이 드문 곳이 대부분이어서 숙박이 큰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행길이 직선이 아니고 위도상으로 북쪽으로 한참 올라갔다가, 큰 산이 가로막히면 수십 키로를 내려 와야 하니 선뜻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철원에서 화천까지 내려 왔다가, 평화의 댐까지 올라 갔다가, 다시 양구까지 내려 왔다, 다시 해안면 펀치볼까지 올라 갔다가, 다시 원통까지 내려 오기를 반복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니 거리는 점점 늘어나고....

그렇지만,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후전선길 여행이 불가능하니 어쩔 것인가. 나이 더 먹기 전에, 건강이 허락할 때 해야겠다고....

이렇게 시작한 것이, 시작이 반이라고 9일 만에 완성을 하게 되었다.

 

. 집에서 주로 다님

문산 오두산에서 여행을 시작하는데, 검색해보니 집에서 새벽 첫차로 출발하면 아침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거 같아, 파주 적성 어유지리에서 버스로 문산까지 가서, 문산에서 택시로 오두산 아래 성동검문소까지 가서 휴전선 도보여행을 시작하였다. 첫 날 문산에서 어유지리까지 오고, 다음은 어유지리에서 시작했으니, 2일을 집에서 자면서 여행하였다. 그리고 연천 신탄리까지 가서도 다시 집에 와서 자고, 다음 날 아침에 갔으니, 이 또한 계획에 없던 일이다. 집에서 다니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니, 편하고, 절약하면서 여행을 한 셈이다.

 

. 1주일에 2일 여행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었으면 한 번 출발하면 한 1주일 정도 계속 여행을 했었지만, 이번에는 크게 무리하지 않기 위해 한 주에 이틀씩 여행을 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마침 시작한 것이 7월 폭염의 계절에 시작하면서 걱정도 했지만, 이왕 극기를 위한 여행의 의미도 있으므로 극복하기로 하였다.

7월말에는 손주 애들이 와서 한 20일 있는 바람에 그 기간 동안은 애들과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여행을 중지하였다가, 애들이 가고 난 다음 8월 중순에 다시 계속 이어 여행하였다.

한 주일에 이틀씩 여행을 하니 폭염 중이라 힘들었어도 회복을 하면서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 기억에 남는 일

- 평화누리길과 나의 여행길

내가 계획한 휴전선길은 일부 평화누리길과 겹쳐지는 곳이 있다. 평화누리길은 지방의 명승지나 볼 만한 곳을 길로 연결해 놓아 지역을 제대로 둘러 볼 수 있는 이점이 있고, 도보나 자전거을 위한 길을 잘 정비해 놓았지만, 단점은 거리가 상당히 멀다는 점이다. 내가 계획한 길은 350키로 정도이지만, 평화누리길을 550키로나 되기 때문에 상당히 더 멀다. 그리고 또 큰 문제는 숙식이다. 하루가 저물 때쯤이면 숙박을 위해 숙소가 있는 곳을 찾아야 하는데 여관이나 식당이 원하는 곳에 없다는 것이 또 다른 어려움이다.

내가 계획한 길은 숙소나 식당이 있을 만한 읍, 면사무소를 기점으로 설정한 것이다. 마침 평화누리길과 겹치면 편하게 걸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도로를 걸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위험에 노출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태극기와 점멸 비상등을 배낭에 꽂고 걷는 것이다. 하루에 백리길을 걷는 것은 누구라도 힘들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태극기를 달고 걸으면 격려해 주는 이들이 의외로 많았다.

- 아름다운 경관

우리나라를 한 바퀴를 돌아보니 기억에 남는 곳이 너무나 많고, 추천하고 싶은 곳이 처처마다 널려 있다. 이번 휴전선길 도보여행도 유유히 흐르는 파주의 임진강. 연천의 주상절리 절벽,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이지만, 평화로운 들녘, 잘 가꾸어진 도로 주변 길, 특히 어디나 울창한 숲 길. 특히 철원, 화천, 양구, 인제는 한두 달 후에 가보면, 지방 자치단체에서 신경 써 조성하고 있는 코스모스길이 일품일 것 같다.

 

파주 임진강
연천 주상절리 절벽 폭포
화천의 유유히 흐르는 아름다운 북한강
인제 서화 천도리의 아름다운 전경
천도리 백일홍 화단

 

-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은 철원 도동당사를 지나 월하삼거리를 지나는 곳에 있는 음식점이다. 이름이 아름다운 동행이란 이름의 식당.

노동당사에서 한 2,3키로 떨어졌을라나... 87번 국도와 464번 지방도의 삼거리의 안쪽에 아름다운 동행이란 식당이 보인다. 불이 켜져 있어 들어 갔더니 식사가 된단다. 얼른 보니 메뉴가 돈까스와 오징어 덮밥이다. 그래도 밥을 먹어야지. 주문을 하고 잠시 기다리는데, 계란 후라이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먼거리 여행을 하시는 거 같은데, 한 개 더 드리려고 한다고. 고맙다. 조금있다 식사라 나오는데, 정말 먹음직스런 모양이다. 그러면서 스프는 돈까스에 따라 나오는데, 그냥 드린다고. 또 고맙고. 밥을 먹는데, 사장님 와서 하는 말씀, 아침에 어머니가 따온 오이라고 여행 중에 드시라고. 아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아침에 펜을 가져 오지 않아 혹시 펜 여분이 있느냐 물으니, 2개를 가져와 쓰시란다. 1개만 달래도 그냥 주신다. .

나오려는데, 혹시 커피 드시려는냐고 또 묻는다. 보니 돈은 안받을 거 같고, 그냥 됐다고 하니 우정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그것을 캔으로 제작해서 한 통을 안긴다. 아니 강원도가 이런가, 아니면 철원의 인심이 이런가. 고맙게 인사를 하고 출발하였다.

감사한 인정에 놀라서 길을 가는데, 한참을 가다 문득 생각이 나는 것이 식대를 주지 않고 왔다. 음식점 사장도 돈받을 생각을 미쳐 하지 못한 모양이다. 이런 실수가..... 뒤로 돌아가기도 그렇게 김화읍에 거의 다 와 인터넷 검색을 해서 몇 시간 후에 전화를 했더니, 그것까지도 서비스로 드리겠단다. 도저히 아니라고 해도, 다음에 오실 때 주시란다.

다음에 도저히 안 갈 수가 없을 거 같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배낭에 꽂고 나니는 태극기 때문인가, 나이 들어 보이는 사람이 먼 거리를 걷는다니 애처러워 그런가......

아름다운 동행 식당에 걸려 있는 식당 모습 사진

식당이 몇 군데 기억이 남는다. 연천 군남의 콩국수집에서는 점심시간이라 사람들이 꽤 있는데, 일부러 주방에 있던 주인이 나와 음식 맛이 어떠냐고 묻는다. 이렇게 친절한 음식점이 이런 시골에도 있구나... 양구의 막국수 집에서는 이곳도 마침 점심시간이라 들렸는데, 인부들이 대 놓고 먹는 모양이라 사람들이 식당 한 가득이다. 막국수을 시키고 기다리는데, 차례대로 음식이 나왔지만 한 40분쯤 기다리니 졸음이 올 때 쯤, 음식이 나왔다. 주인 아줌씨가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른다. 아직 우리나라 살만한 나라다.

 

- 대한 민국 만세다.

우리나라는 각 지방을 여행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하여 외출을 삼가는 바람에 요즘 들어 많이 줄어 들었다. 서해안길을 여행하면서부터 배낭에 태극기를 꽂고 다니는데, 사람들이 보면 장거리 여행하는 사람인 것을 알아보는 모양이다. 대부분 가는 곳마다 지나는 사람들이 어디까지 가느냐고, 힘내시라고 격려의 말을 주신다. 참 고맙다. 연천 군남을 지나는데, ‘대한민국 만세!’하는 소리가 들린다. 놀라서 돌아보니 오토바이 타고 가는 사람이 주먹을 불끈 쥐면서 소리를 지른다. 나도 대한민국 만세!’ 큰 소리로 답을 해 주었다. 뜨거운 날씨인데도 힘이 불끈 솟는다. 나이도 꽤 들어 보이는 사람이 이 뜨거운 날에 장거리 여행하는 모습에 격려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 참 많다. 고마운 일이다.

 

- 친절한 아주머니 운전기사

연천 전곡에서 39번을 타고 신탄리역으로 가는데, ‘어서오세요큰 소리가 들린다. 운전기사가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아줌마 기사인데, 정말 신나게 인사를 한다. 가끔 인사를 잘하는 기사를 보지만, 이렇게 친절하게 경쾌하게 인사를 잘하는 아줌씨 기사는 또 첨이다.

친절한 기사를 만나 참 기분 좋게 아침을 맞습니다.’하니 고마워요, 당연하잖아요...’한다. 이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기분이 참 좋을 거 같다. 아름다운 아침에.

 

-이길리 검문서에서

아름다운 동행에서 점심을 먹을 때, 주인이 검문소 통과가 될지 모르겠다는 걱정을 하는 것을 들었지만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 출발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검문소에서 위병들이 철원주민이 아니면 통과할 수 없다고 돌아가란다. 아니 십 여 키로를 돌아가라고.... 날 어쩌라고... 작년에는 중간 중간에 cctv가 설치 되어 있어서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 할 수 있었는데, 작년 홍수로 cctv가 침수된 후 아직 복구되지 않아 통행이 불가 하단다. 사정사정하고 있는데, 위병들이 보기에 참 딱해 보였는지, 얼음 냉커피를 한 잔 타 와서 나를 진정을 시키고, 조금 선임인 듯 보이는 위병이 나오더니 이런 일은 없었는데, 다음 도창리 검문소까지 승용차로 태워 주겠단다. 민간인이 통행할 수 없는 길을 위병의 승용차로 무사히 통과. 참으로 다행이다.

 

- 빨래까지 다 해주는 여관.

저녁에 도착한 곳이 철원 와수리버스터미널 앞 여관이다. 원래 숙박비가 4만원인데, 현금을 주니 오천원 깍아 준단다. 태극기 탓인가. 속옷 세탁을 하여 말리려고 선풍기도 달라고 했더니, 연세가 꽤 높아 보이는 할머니 사장님이 아예 땀에 젖은 옷을 다 벗어 달란다. 건조까지 시켜서 방으로 가져다 준단다. 세상에. 다니다 다니다 참 별난 여관 다 본다. 빨래까지 해 주는 여관이 또 있을까....

 

- 비 맞으며 넘은 수피령고개.

철원 서면과 근남면을 지나가는데, 비가 오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오늘은 비를 맞으면서 걸어야 겠다 생각하고 걷는다. 한 손에는 스틱을 한 손에는 우산을. 그런데 가도 가도 계속 오르막이고 끝이 안 나온다. 주위에는 거의 군 부대이고, 다니는 차량도 별로 없고.... 해발 500미터, 해발 600미터, 해발 700미터 표지판이 차례대로 나온다. 아이구.... 이제 정말 강원도에 들어섰구나 싶은데, 정상에 올라서니 780미터. 도봉산 자운봉보다 높다. 화천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험하구나 싶다. 그곳에서 화천까지는 거의 내리막.

수피령 정상에 오르니 비가 그쳐 있었다.

- 평화의 댐에서 일박.

휴전선길 중에 제일 걱정을 많이 하고, 이 코스를 뺄까도 생각했던 곳이 바로 이 평화의 댐 구간이다. 여기는 다니는 사람이 없어 정규 버스 노선도 없고, 식당도 숙소도 없다.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 할 수 없이 용기를 내서 배낭과 침낭을 짊어지고 집에서 출발하였다. 춘천에서 버스를 타고 화천가는 길에 가만히 생각하니 문득 퀵서비스가 떠 오른다. 인터넷에 검색해서 알아보니 화천에서 평화의 댐까지 실어다 주는데 4만원이란다. 아이구 살았다 싶어 터미널에서 짐을 평화의 댐으로 부쳤다. 퀵이 택시운전사다. 그리고 관리실에 부탁해서 좀 받아 놔 달라고 부탁을 하고. 그리고 또 우체국에 전화를 해서, 다음 날 그 짐을 다시 집으로 택배로 보내 달라고 예약을 했다. , 이렇게 간단한 것을 미쳐 생각을 못했으니... 화천에서 평화의 댐까지 거리가 약 37키로쯤 되는데, 중간에 관리실에서 두어 번 전화가 왔다. 잘 오고 있느냐고... 고맙게도. 도착하니 넓은 캠핑장에 사람이 하나도 안 보인다. 웬일인가 보니, 그 날 강원도에 코로나 3단계가 발령되어 예약했던 사람들 모두 돌려 보냈단다. 그런데 혼자 걸어오는 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받았으니, 그 큰 캠핑장을 혼자 독차지 했다. 이런 영광(?)이 있나.

평화의 댐의 조명과 밤하늘의 별과 시원한 산골 바람과.... 참 아름다운 밤이었다.

당시에는 이 터널이 제일 높은 위도, 제일 높은 고도, 제일 긴 터널이었던 모양.
다니는 차가 없다.
혼자 독차지한 평화의 댐 캠핑장
저녁으로 라면 한 그릇 끓여 먹고
석양의 평화의 댐

- 감로수을 맛보다.

평화의 댐에 가는 날. 참으로 엄청 더웠다. 배낭에 물병을 2개 가지고 가면서 조금씩 물을 먹으면서 가는데, 워낙 더워 물이 동이 난다. 지나는 길 옆이 있는 집 마당에 수도꼭지가 있으면, 다시 물병을 채우고, 가다 농협이나 기관이 있으면 염치 불구하고 들어가 정수기 물을 받아 채워갔다. 그런데 평화의 댐으로 가는 길에 큰 고개에 터널이 있는데, 이름하여 해산터널이다. 이 터널까지 오르는 길이 몇 키로가 되는데, 물이 모자랄 수 밖에. 온 몸이 땀으로 젖고, 물은 거의 동이 나갈 때 쯤, 저 앞에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프라스틱 호스로 내려오게 설치한 것이 보인다. 세상에나.... 어떤 사람이 이 물길을 만들어 놓았는가? 세상에 감로수란 말을 들어나 봤는가? 참으로 고맙고도 감사하다. 이 물길을 만든 사람은 아마 천사일 것이다. 산에서 내려 오는 물을 배부르게 마시고, 물병에 물을 가득 채워 다시 출발하였다.

해산 터널 거의 다 올라 간 곳에 있는 감로수

- 터널을 3개나 통과하다.

여행의 시기를 제일 더울 때를 고른 것은 극기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힘이 들어도 극복하리라, 하였다. 최전방의 길을 걷기 때문이겠지만, 사는 사람 수도 적고, 다니는 차량도 적다. 특히 화천, 양구 쪽은 최전방이라 차량의 통행이 참으로 뜸하다. 터널 통과도 용기를 낸 것이 그런 이유가 크리라. 이 더운 시기에 터널에 들어가는 것은 바로 냉장고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화천의 해산터널(길이 2키로, 고도 740미터), 오천터널, 그리고 양구 해안의 돌산터널(길이 3키로, 고도 620미터)이다. 참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길이 3km나 되는 해안 펀치볼 가는 길의 돌산 터널

- 펀치볼

펀치볼이라는 지명을 오래 전부터 들으면서, 권투도장에서 잽을 연습하는 볼을 닮아서 그렇게 부르는가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가서 유래를 보니, 펀치(과일이름)라는 화채를 담는 그릇이라는 뜻이다. 양구 돌산 터널을 통과하면서 보이는 지형이 마치 넓적한 화채그릇을 꼭 닮았다. 아하... 그래서 미군들이 그렇게 이름을 붙였단다..... 이곳이 6. 25전쟁 때 피아간에 뺐고 뺐기기를 몇 차례할 정도로 격전이 벌어졌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의 특산물은 시래기란다. 무를 심어 무는 거의 버리고, 시래기만 채취해서 판매를 한단다. 온 들이 무가 가득 심겨져 있다. 이곳은 지금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시끄러운 대남방송으로 잠을 제대로 못 이룰 정도였는데, 이 정부 들어서면서 그 방송이 없어지고 살만하단다. 민간인 출입도 통제되었었는데, 그 후 통제가 풀리고... 그리고 숙소라고는 민박밖에 검색이 되지 않았는데, 우연히 지나다 보니 모텔이 하나 있다. 시설이 워낙 형편이 없어 그렇겠지만 3만원에 하룻밤을 지냈다.

이곳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추천하고 싶은 숙소가 농부레스토랑이라는 곳이다.

멀리서 보니 참 깨끗해 보인다. 저녁은 농가 맛집이라는 음식점에서 먹었는데, 시장할 때 먹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참 맛이 있었다.

펀치볼 마을은 온통 우 시레기 밭

. 경비의 정리.

이번 여행의 경비가 4십여만에 불과한 것은 집에 다닌 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숙박비가 많이 들지 않은 것이다. 이번에 다니면서 알게 된 것 중에 하나는 화천, 양구는 춘천에서 버스로 가니 한 시간 이내로 갈 수 있었다. 특히 나이 많다고 춘천까지 가는 전철이 무료이니 교통비로 절약되고. 그러나 원통은 춘천에서 바로 가는 버스편이 없고, 홍천에서 갈아 타야 한다고 한다. 어쨌던 경비는 많이 절약된 거 같다.

 

. 고마운 사람들.

여행을 하는 중에 격려해주신 지인분들과 고마운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특히 화천까지 와서 격려해 주신 昭軒선생, 마지막 코스 미시령고개를 같이 걸어 주신 譚齋선생께 특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목적지에 도착해 보니 발바닥에 큰 물집과 온통 발이 부르터서 엄청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길 더불어 같이 하기를 바란다.

격려차 화천까지 찾아 오신 소헌선생.

 

마지막 미시령길을 같이 걸어 간 담재선생

. 앞으로 계획.

버킷리스트로 퇴직 때 몇 가지 생각하고 있었던 것 중에 한 가지가 전국 국토순례였다. 양평 양수리에서 고향까지 약 400키로를 시작으로 해파랑길, 남해안길, 서해안길에 이어 휴전선길 까지 이제 완성하였다.

앞으로는 각 지역마다 다름대로 개발해 놓은 지역 둘레길을 걸으려 한다. 그동안 많은 지역과 산들을 다녀 보니 숨겨진 진경이 한반도 곳곳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각 지역에서 정성들여 개발하고 있는 곳들이 참 많다. 비록 인공적으로 가꾼 곳이라 해도 내외가 같이 다녀 보려고 한다.

 

. 불우이웃돕기 활동의 실천.

지금까지 약 3천키로 전국을 여행을 하면서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휴전선 도보여행을 계기로 뜻 깊은 이웃돕기 활동을 벌이고자 한다.

휴전선길 전체 거리가 335km 였으니, 나는 1km에 천원씩 계산하여 전체 금액 335천원을 기부하기로 한다.

또 이 취지에 동의하시고 참여해 주실 지인들이 계시면, 1km에 백 원씩, 335백원을 기부해 주시기를 바란다. 기부에 동참하는 분은 내가 그 금액만큼 더 보태서 불우이웃돕기 행사를 시행하고자 한다.

이 활동에 동참하고자 하는 분은 나에게 문자로 의사를 표시해 주면, 절차를 알려 드리고자 한다. (010-8774-6481)

 

(마무리 하면서)

이번 여행을 하면서 지금까지 가보지 않았던 오지, 산골짜기, 첩첩 산중을 걸으면서 아름다운 금수강산, 그 속에 살고 있는 정 많은 우리 이웃을 많이 경험하였고, 그리고 발전한 우리나라의 모습도 한꺼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 지하철 경로석에 앉으려면 눈치가 보이기도 하지만, 언론 매체의 표현을 빌리면, ‘칠십대 노인이잖은가.

퇴직 할 때 생각하였던 버킷리스트 중 한 가지를 완성하였다.

 

나의 서재에 걸려 있는 작은 액자에 이런 글귀가 적어 두고 있다.

行若今死, 學若永生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생활하고,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공부하자는 의미이다.

세상 사람이 후회 없이 살아갈 수가 있겠는가마는, 돌이켜 보면 웬 후회스런 일이 그렇게 많은지....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참으로 후회없는 생을 살았으면 싶다.

벌써 생을 살아 온 지 칠십 여 년. 퇴직한 지도 벌써 9년이다. 어정거리다 보면 금방 팔십이 될 것이다. 퇴직할 때는 일 만 시간을 노력하면 한 분야의 최고는 아니라도 한 가닥은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벌써 근 십 년을 지나고 보니, 한 가닥은 고사하고 반 가닥, 반의 반 가닥도 못한 거 같다. 너무 허송 세월한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學若永生’.

구십 정도까지 산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공부하면서 살아가고자 한다.

그동안 관심을 가져 주시고, 격려을 아끼지 않았던 지인들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날짜별 여행기는 나의 다음/블로그에 탑재하였다.